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책보에 도시락 넣고 달리던 눈길

산골의 작은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의 도시락은 늘 꽁보리밥에 반찬이라고는 무김치에 콩 자반, 깻잎 등이 전부였다. 김이 솟구쳐 오르는 밥솥에서 어른들의 눈을 피해 이밥이 섞인 도시락을 싸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도시락을 먹기 위해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책보를 허리에 두르고 논길을 달리다 보면 반찬 국물이 흘러나와 책보를 볼썽사납게 만들기 일쑤였다. 책이며 공책 군데군데 흔적을 남기는 것은 물론 퀴퀴한 냄새까지 풍겼다. 하지만 도시락 먹는 즐거움은 늘 남달랐다.

하교시에 책보에 빈 도시락을 넣고서 집으로 향해 뛰어가면 덜커덩 덜커덩 소리를 낸다. 빈 도시락은 발걸음의 지휘에 따라 도시락과 수저와 반찬 통이 서로 달그락거리며 연주를 해 숲길에 행진곡이 울려 퍼진다. 그럼 이름 모를 새들은 지저귀고 길섶의 들꽃들은 바람에 어깨춤을 추며 장단을 맞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일상에서 흔히 대할 수 있었던 도시락을 요즘은 보기 드물다. 학교 구내식당이나 단체급식이 도시락 문화를 떠밀어냈고, 때맞춰 불어온 패스트푸드 열풍이 가세해 아예 벼랑 끝으로 밀어냈다. 어머니의 사랑을 배달하던 도시락은 한낮 소용없는 플라스틱 덩어리로 변해 그릇장 어느 한 구석에 밀쳐져 있다.

아내도 가끔 아이들이 야외학습이나 소풍을 갈 때 도시락을 싸 준다. 그런 날이면 나도 덩달아 도시락 점심을 먹는다. 동료들과 회사 주변의 산책로에 앉아 소풍 나온 초등학생인양 김밥을 먹노라면 어머니의 손맛이 그립다. 그런 날이면 어머니가 사 주셨던 보리밥 도시락이 먹고 싶어진다.

전병태(대구 서구 평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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