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34). 이벤트MC로 대구 바닥을 휘젓던 그가 '전국구'가 된 지 벌써 6년째다. 대구 동네 사람들이 김제동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남다르다. '킥킥' 웃는 그가 이웃 같고, 아는 사람 같다. 대구에 사는 김제동의 지인들도 많다. 하지만 실제 그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그동안 몇차례의 인터뷰 시도가 있었지만 '바쁘다'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운 좋게 이달 9일 삼성 라이온즈 홈경기 시구차 대구를 찾은 그를 만났다. 검은 뿔테 안경과 카디건, 찢어진 청바지. 그의 허리띠는 앞뒤가 분리될 정도로 낡아 있었다. 김제동은 누구를 만나든 꾸벅꾸벅 인사를 했고, 자신의 스승으로 부르는 방우정(47)씨 앞에서는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그는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 버릇이 있었다. 이날 야구장에서 인터뷰를 한 탓인지 유독 야구에 빗댄 설명도 많았다.
◆내 성향은 Am
-휴대전화 벨소리로 뭘 쓰세요? 컬러링은요? 바탕화면에는 뭐가 저장돼 있나요?
"벨소리는 윤하씨의 '비밀번호 486'인데요. 예전에 윤하씨가 '스타골든벨'에 출연했을 때 윤하씨 노래로 벨소리를 바꾸겠다고 약속을 해서 해놓은 것이고. 컬러링은 전 항상 김광석의 노래인데 지금은 '너에게'로 돼 있습니다. 바탕화면은 따로 문구 같은 건 없고요. 사진하고 달력. 승엽이하고 찍은 사진이고 전화 올 때 화면은 산이네요."
-성격이 밝은 편이 아닌가요?
"김광석씨의 노래들이 제 성향이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힘이 있는 우울함이죠. 제가 '밝고 맑고 막 떠들고' 이런 쪽은 아닌 것 같아요. 마이너(m) 풍의 노래들은 조금씩 우~울합니다. 빨리 불러도. 제가 좀 그런 성향입니다. 성향이나 성격이 Am나 Em라고 보면 될 겁니다."
-시간날 때 뭐 하세요?
"혼자 다니는 거 좋아합니다. 등산하고 책 보고, 혼자 집에서 달 보고. 산은 누구를 만나도 항상 권합니다. 굉장히 좋아서. 일주일에 3번 정도 갑니다. 오후에 녹화가 있으면 북한산이나 삼각산 잠깐 다녀오고. 우리나라 대표 명산 정해놓고. 60~70개 정도 다닌 것 같아요. 책은 요즘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읽고 있습니다."
-술 많이 드십니까? 제가 듣기론 유흥주점에서도 소주를 주문한다던데요?
"오래 마실 때에는 주량 관계없이 4시간 30분 정도 먹습니다. 짧게는 1시간 30분 정도. 술잔이 바닥에 놓여있는 시간보다는 들고 있는 시간이 더 많다고 보면 됩니다. 짧고 치열하게 먹고. 푹 자고. 사실 처음에는 오해도 많이 받았습니다. 유세 떤다고. 제가 싼 술을 찾는 게 아니라 소주가 맞으니까 찾는 거죠. 비싼 술이 맞았으면 먹었겠죠."
-대통령 취임 행사 사회를 맡아서 화제가 됐는데요. 평소 김제동씨 정치적 성향하고 이명박 대통령과는 좀 다르지 않나요?
"웃음에는 색깔이 없어야 된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또 일반적인 정당행사가 아니었잖아요. 제18대 대통령 뒤에 누구의 이름이 붙었어도 취임식이라고 하면 갔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분명히 영광스러운 자리거든요. 나중에 굉장히 많은 이야깃거리를 양산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사실 전에 매니저가 실수를 한번 해서 안 가려야 안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인수위에서 전화가 왔는데. 저 친구가 하도 그런 걸 몰라서 '인순이'가 어디서 행사하냐고. 하하하. 그날 행사 때 기억나는 건 일단 굉장히 추웠습니다. 헤헤."
◆연예인은 작두 위의 무당
-'김제동' 하면 공익성 강한 오락프로그램이 생각납니다. '눈을 떠요'나 '산넘고 물건너' '지금 만나러 갑니다' 같은 소외 계층을 위한 프로그램을 많이 했는데, 그게 이미지를 위해 의도된 것이었나요?
"그런 건 아니고요. 사실 이미지라는 게 오랜 세월 동안 노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갖게 되는 느낌이나 감각인데, 저는 아직 그런 것이 형성될 때조차 안 됐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머님, 아버님들 찾아다니는 프로그램을 좋아합니다. 일단 제가 안 웃겨도 되니까요. 또 그분들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보여주시는 연륜이나 말씀을 경청할 필요가 있죠. 사실 TV는 다수, 영어로 하자면 '메이저'의 개념이거든요. 어느 사회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연소자나 연장자나 힘이 없는 분들은 '마이너'죠. 메이저의 기능을 장착하고 있는 미디어가 마이너를 대변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요즘에는 '독한 방송'이 인기를 얻고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인 시대인데요. 김제동씨는 최근 바뀐 버라이어티 풍토에서 약간 겉돈다는 느낌이 듭니다만.
"굳이 따지자면 제가 못 따라가는 건 사실입니다. 우루룩 나왔다가 치고 들어가고 하는 것이 안 되고. 그러나 뒤에서 병풍처럼 있더라도 연결하는 맥은 있잖습니까. 주자 2루 있을 때 2루타를 치면 첫 송구를 하는 사람은 외야수지만 중간에 중계 플레이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런 플레이라도 잘하는 게 저의 욕심입니다."
-대중들은 김제동씨를 보고 예의 바르고 겸손한 청년을 떠올립니다. 실제 자신의 모습인가요?
"방송을 하다 보면 끝까지 꾸민 모습을 보여줄 순 없죠. 재석이형이나 호동이형을 보면 방송의 이미지와 실제 모습이 차이가 없습니다. 저는 성격이 전형적인 대구경북 남자로 보면 될 겁니다. 욱 하지만 싸움은 잘 못하는 거. 예의에 관해서 어렸을 때부터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가식도 10년 이상 하면 예절로 인정해준다.' 강박관념이라면 강박관념이죠."
-연예인이란 게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직업이고, 한순간의 실수로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건데 불안하진 않으신가요?
"불안하죠.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작두 위에 서 있는 것 같아요. 옛날에 천민인 무당이 접신을 해서 작두 위에 올라가면 그때만큼은 신의 대리인 역할을 하죠. 연예인도 대중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는 존경받고 사랑받다가 조금만 잘못해서 뚝 떨어지고 작두에 발을 베이고 나면 버림받고 힘들어져요. 대신 연예인은 그런 불안을 상쇄할 만큼 대중의 사랑을 넘치게 받지 않습니까. 하지만 작두에서 내려오면 박수치지 않을 거고, 작두 위에서는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야 되고. 연예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숙제지요."
◆기부는 빚을 갚는 것
-모교(대구 달성고)를 지원한 것을 비롯해 여러 곳에 기부를 하셨던데요.
"여기가 다 제가 자라고 토양이 돼 왔던 곳이니 갚는다고 봐야 되겠죠. 고교 때 관련된 추억도 있고 전 거기서 다 형성이 돼서 나온 거니까 되돌려 드려야죠. 또 대구에 돔 야구장을 잘 짓는 데도 앞장서고 싶습니다. 일본의 야구장에 가면 부럽거든요. 막 샘납니다. 거의 놀이공원입니다. 야구가 조금 더 발전되도록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버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본인의 인생에 있어 닮고 싶은 모델이 있습니까?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이렇게 살지 않으셨을까라는 생각을 늘 합니다. 어머니나 누나들, 친척들이 말하는 아버님의 성품이 있잖습니까. 그런 걸 상상합니다. 이랬을 것이다하고. 아버님이 술 좋아하시고요. 많이 퍼주셨답니다. 여기저기. 외상값 많고… 흐흐. 사람들 좋아하시고 그러셨다는데 그렇게 한번 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방송 생활 6년째인데요. 5년 뒤 본인은 어떤 모습일 것 같아요?
"다섯시간 뒤라도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걸 누가 알겠습니까. 하지만 요즘 안타까운 건 그동안 주위 사람들을 너무 못 챙겼습니다. 알게 모르게 조금 거만해진 것 같고. 저는 똑같이 행동해도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는 다를 수 있겠구나. 어떤 고교 동창은 술 취해 전화해서 '야, 다 때리치아라. 은퇴하거든 보자' 이런 애도 있고. 저도 그런 식으로 상처를 받는 게 많습니다. 최대한 그런 것을 줄여 나가고 싶은 게 제 목표입니다."
-미래의 목표가 있다면요?
"어떻게 돌려드려야 될지 고민하며 살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 나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고요. 다만 아이들이 출발점을 똑같이 만들어 놓고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돈 때문에 공부하지 못하는 애들은 없어야겠죠."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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