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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관의 시와 함께] 간밤에 추하다는 말을 들었다/허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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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고양이 한 마리가 관절에 힘을 쓰며 정지동작으로 서 있었고 새벽 출근길 나는 속이 울렁거렸다.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전진 아니면 후퇴다. 지난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나와 종일 굶었을 고양이는 쓰레기통 앞에서 한참 동안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둘 다 절실해서 슬펐다.

"형 좀 추한 거 아시죠."

얼굴도장 찍으러 간 게 잘못이었다. 나의 자세에는 간밤에 들은 단어가 남아 있었고 고양이의 자세에는 오래전 사바나의 기억이 남아 있었다. 녀석이 한쪽 발을 살며시 들었다. 제발 그냥 지나가라고. 나는 골목을 포기했고 몸을 돌렸다. 등 뒤에선 나직이 쓰레기봉투 찢는 소리가 들렸다. 고양이와 나는 평범했다.

간밤에 추하다는 말을 들었다.

모든 동물에게는 '도주거리'란 게 있다. 골목길에서 맞닥뜨린 고양이, 일정 거리에 접근할 때까지 빤히 쳐다보다가 한순간 공격하거나 도망을 간다. 그것이 도주거리다. 도주거리는 동물마다 다르다. 영양의 도주거리가 450m인 반면 도마뱀의 도주거리는 1.8m이다. 동물들이 도주거리를 지니게 된 까닭은 종의 번식과 집단의 보호를 위해서라고 한다.

내게도 지키고 보호해야 할 가솔이라는 집단이 있다. 맹수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뒷골목에서 '쓰레기봉투'를 찢어야만 하는 치욕. 치욕과 굴욕을 주식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에서 "고양이와 나는 평범"하게 일치한다. 그러니 제발 서로 못 본 척 그냥 지나가자고. 그런데 너! 가뜩이나 켕기는 나에게, 얼굴도장 찍으러 간 내 염치에 대못을 박는 젊은 너! 나도 추한 거 안다고. 추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제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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