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재&문화] 국보와 보물의 나이조건

"국보와 보물의 나이조건"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보물'은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적, 예술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것과 이에 준하는 고고자료 중에서 중요한 것을 지정한 것"으로 정의되며, '국보'는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에서 인류문화의 관점에서 볼 때 그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한 것"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만약 이러한 지정요건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시기에 만들어진 최신 유물이나 작품들조차도 곧장 국보나 보물로 지정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그것이다. 하지만 문화재청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 현행 국보 보물 지정목록을 살펴보면, 이러한 사례는 아직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특정한 문화재는 세상에 태어난 지 최소한 몇 년 정도의 세월이 흐른 것이라야 국보 또는 보물로 지정될 요건을 갖추었다고 인정될 수 있을까?

아쉽게도 문화재보호법에서는 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마련해두지 못한 상태이다. 일반적으로 문화재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시간경과기준은 '50년'이라는 지적이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통설이 그러하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구속력 있는 잣대라고 보기도 어려운 측면이 있다.

실제로 국보와 보물의 반열에 오른 문화재를 통틀어 그 나이가 가장 젊은 문화재가 어떤 것인지를 찾아보면, 그러한 잣대조차도 그리 엄격하게 적용되지는 않았다는 것이 확실해진다.

우선 우리 나라의 보물 가운데 가장 연륜이 짧은 문화재는 바로 보물 제1245호 '백범일지'이다. 이것은 1929년에서 1945년에 걸쳐 백범 김구 선생이 몸소 작성하였으며, 생성연대라고 해봐야 겨우 반세기쯤을 넘긴 정도였으나 독립운동사 연구의 사료가치가 인정되어 지난 1997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이것 다음으로 연륜이 짧은 문화재는 지난 1972년에 보물 제568호로 지정된 '윤봉길의사 유품'이다. 이것들은 1932년에 상하이의거로 순국한 윤봉길 의사가 남긴 유품 일체로 구성되었으며, 특히 보물지정 당시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이 유품들은 고작 40년 남짓한 세월이 지난 상태였다.

그럼 국보의 경우는 어떠할까? 우리 나라의 국보 가운데 가장 나이가 젊은 문화재는 국보 제223호 경복궁 근정전과 국보 제224호 경복궁 경회루이다. 이것들은 모두 대원군에 의해 경복궁 중건이 이뤄지던 1867년에 함께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근정전과 경회루는 올해로 140살을 살짝 넘긴 '막내' 국보인 셈이다.

여기에서 보듯이 우리 나라의 국보와 보물은 아직은 일제강점기 이전에 생성된 것만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해방 이후에 만들어진 것들은 미처 국보와 보물의 지위를 얻을 만큼 그다지 연륜이 오래지 않았다고 평가되고 있는 탓인 듯하다.

당연한 얘기이겠지만 지금보다 수십년 더 세월이 흐른다면 근대시기의 것은 물론이고 바로 우리 시대의 유물이나 작품들도 차차 국보나 보물의 지정대상에 포함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예견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일조차도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스스로가 장차 국보와 보물로 지정될 수 있는 유물들을 창조하고, 이것들을 잘 보존하여 남겨두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을 때에나 실현가능한 것임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순우 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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