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조망 울타리 너머 고추 꽃이 하얗다
우물에서 건졌는지 아삭 씹히는 달빛
억새풀 밭둑에 앉아 칼을 벼리고 있다
구릉 넘는 마차 타고 읍내로 간 영미
박 넌출 꼬리 뻗고 폐교에 온 고양이가
생채 맛 달빛 한 권을 포크로 찍고 있다
폐교의 풍경을 떠올려 보시렵니까. 이형기 시인이 '엑스레이 사진'에서 쓴 표현을 빌리자면, 폐교의 풍경을 잡은 이 사진은 앵글이 기막힙니다. 달빛 그늘 속에 책 읽는 소녀상은 유독 선연한데요. 마차를 타고 읍내로 떠난 그날의 영미가 닮아선가요.
철조망 울타리 너머로는 고추 꽃이 하얗습니다. '우물에서 건졌는지 아삭 씹히는 달빛'이 행간에 아연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그런 감각의 칼을 벼리듯 서걱대는 억새풀. 그 때문에 밭둑의 달빛은 한결 더 부십니다. 부신 달빛이 보일 듯 말 듯한 실루엣을 두루 감쌉니다. 교정에 가득한 '달빛 한 권'을 소녀상은 저만치서 다 읽고 있습니다.
한 장씩 툭툭 끊어낸 풍경의 심상들이 읽는 이를 아련한 추억 속으로 이끕니다. 박 넌출을 따라온 고양이까지 끼어드는군요. 달빛의 생채 냄새라도 맡은 걸까요. 고양이의 날카로운 발톱에 달빛 책장이 북 찢어집니다. 밤이 웬만큼은 깊었습니다.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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