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通) 하였느냐?"
참 의미심장한 말이다. '통한다'는 말은 한쪽과 한쪽이 막힘이 없이 시원하게 뚫리는 것을 말한다. 서로 뜻이 통하고, 몸이 통하고, 정이 통한다. 통상 '정을 통한다'는 말은 육욕의 정이 서로 소통하고, 왕래한다는 뜻이다.
이재용 감독 '스캔들:남녀상열지사'(2003)의 빅히트 대사가 바로 이 말이다. 점잖으신 선비님이 할 말은 아니지만, 고루하고 막힌 상류사회에 대한 반감이 있는 주인공은 여인을 탐하면서 외설스럽게 그렇게 내뱉는다.
배용준 이미숙 전도연 주연의 '스캔들'은 18세기 말 프랑스의 쇼데를로 드 라클로가 쓴 서간체 소설을 원전으로 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 전의 문란하고 퇴폐적인 상류사회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비판한 작품이다.
스티븐 프리어즈의 '위험한 관계'를 비롯해 '발몽',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등의 영화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이 원전이 18세기 조선시대로 옮아왔다. 조선 최고의 요부 조씨 부인(이미숙). 그는 사대부 현모양처의 삶을 살지만, 남몰래 남자들을 정복해가는 사랑게임을 즐긴다.
그의 파트너가 조원(배용준)이다. 사촌동생이자 정부인 조원은 시·서·화에 능하고 무술도 도통했으나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비웃듯 고위관직을 마다하고 뭇 여인들을 탐한다. 어릴 적 첫사랑의 대상이기도 한 조씨 부인과는 서로에 대한 감정은 숨긴 채 사랑게임의 은밀한 동업관계를 유지한다.
어느 날 조씨 부인은 남편의 소실인 어린 소옥을 범해줄 것을 조원에게 제시하지만, 조원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다. 바로 숙 부인(전도연)이다. 그녀는 9년간 수절하며 열녀문까지 하사받은 정정녀. 조씨 부인은 난공불락의 그녀를 내기의 제물로 삼는다. 과연 그녀를 유혹할 수 있을까.
어떻게든 유혹하려는 조원과 욕망의 흔들림에도 이를 피하려는 둘의 게임이 시작된다.
'남녀상열지사'라는 부제대로 영화는 사대부 집안의 풍속과 문화를 배경으로 에로틱한 장면이 펼쳐진다. 부유층들의 호사스런 삶과 내밀한 감정들이 프랑스와의 간격을 뛰어넘어 매혹적으로 그려진다.
순수 제작비 50억 원. 이제까지 만들어진 어느 조선 시대물보다 더 화려하고 고혹적인 화면효과를 보여준다.
은밀한 유혹의 캐릭터인 이미숙과 당차지만 본능 앞에서 약한 전도연이 맡은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하고, 미남의 대명사인 배용준까지 매력적인 연기를 펼쳐낸다.
안방TV에서 얼마나 잘려나갈지 모르지만, 화려한 색감과 섬세한 표정을 HD로 감상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KBS1TV 28일 0시 55분 방송.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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