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0년 마을 수호신 '미륵불' 사라졌다

영덕 병곡면 영3리 사당 침입 훔쳐가

영덕판 '옹박'사건이 벌어졌다. 영덕 병곡면 영3리(속칭 미륵골) 33가구 주민 73명은 지난달 30일 마을 입구에 위치한 사당 안에 있던 석상 미륵불(사진)이 사라졌다고 신고했다. 오지 마을 주민들이 수백년간 수호신으로 여겨온 '미륵불'이다.

이 마을 송정복(65) 이장은 "평소 사당문을 자물쇠로 잠가 외지인의 접근을 막아 온 '마을의 성역'인데 6cm 깊이의 바닥에 봉해놓은 불상을 누군가가 파헤쳐갔다"고 한숨을 지었다. 높이 127cm, 어깨 폭 60cm 크기의 이 미륵불은 조선 숙종 15년(1689년)에 화강암으로 만든 것으로 넓은 얼굴에 큰 코와 콧수염이 특이하고 앞가슴에 양손을 모으고 손에 팔주령과 비슷한 꽃을 들고 있는 것이 특징.

이 미륵불은 300여년간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수호신으로 여겨지면서 마을 이름도 미륵골로 불릴 만큼 마을 주민들에게는 정신적 지주로 자리잡았고, 정월 대보름을 포함해 연간 두차례 마을 동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영험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외지 방문객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사건 현장을 확인한 결과 미륵불은 사당 위치가 영덕에서도 군도와 산길 비포장 도로 1.5km를 통과해야 하는 오지여서 수차례 현장 답사를 거친 문화재 전문절도범의 소행으로 보였다.

김상현(42) 영덕군 학예사는 "미륵불의 모양이 특이해 밀거래는 불가능할 것"이라며 "영리 주민들의 심적 공허감을 해소하기 위해 모조 미륵불이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영덕·박진홍기자 pjh@msnet.co.kr

◇옹박= 태국 북쪽 오지 마을에서 수백년간 수호신으로 모신 불상머리를 도난 당하자, 주인공이 이를 되찾기 위해 방콕의 문화재 국제밀매조직을 찾아가 싸움을 벌인다는 내용으로 수년전 국내에서 인기를 끈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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