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바람이 불면 진료실도 함께 출렁인다. 한여름 잘 지내던 분이 잠을 못 자고 때론 우울증으로 입원을 한다. 가장 큰 변화는 중년 남성들의 방문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고 싶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인가 보다.
왜 남자들이 더 가을을 타는 걸까? 의학적으로는 생체시계의 차이로 설명한다. 생체시계가 여성은 봄에, 남성은 가을에 맞춰져 있어서, 일조량이 늘어나는 봄에는 여성들의 기분변화가 두드러지고, 일조량이 줄어드는 가을에는 남성들의 멜라토닌 분비가 증가되어 기분변화를 초래한다고 설명한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라는 점이 남자에게 위협적일 수 있다. 성취를 통해 존재감을 찾으려는 남자들은 농부가 수확을 하듯 1년간 한 일을 자가평가하면서, 못다 이룬 것에 대한 자기비난으로 의기소침해지기 쉽다. '인생의 정오'를 막 지난 40, 50대에게는 심리적 위기감을 초래할 수 있다. 오직 목표를 향해 전진하다가, 어느 날 문득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고, 이제 내리막만 남았구나라는 심리적 공황상태인 '상승정지 증후군(Rising stop syndrome)'에 시달린다.
이들은 지나간 추억, 못다 이룬 꿈, 그러나 이룰 수 없는 무력감을 하소연할 수 있는 대상을 찾는다. 남자들이 가을에 가장 원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가을날 남자의 외도는 성적 탐닉이 아니라 무장해제한 솔직한 자기를 이해받고자 하는 소망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가을에는 낙엽, 이별, 죽음 같은 가을의 정서 탓에, 기부도 더 하고, 고해성사도 늘어난다. 인간의 유한성에 대해 겸허해지고 남을 돕지 못한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속죄행위 같은 기부나 고해성사 후에 찾아드는 심리적 홀가분함에 만족한다. 고백 효과(Confession Effect)의 위안을 누리는 것이다.
가을 정서는 마른 낙엽에 불붙듯 전염성이 강하다. 평소 모임을 즐기지 않던 사람도 회식이나 모임을 더 많이 가진다. 술집이나 식당 매출도 증가한다. 덧없이 흐르는 세월에 외로워질 때 집단최면을 통해 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잘 지나갈 수 있을까. 첫째 햇볕을 쬐면서 산책이나 운동을 통해 몸을 많이 움직이면, 호르몬 분비가 활발해지면서 기분이 가라앉는 것을 막아준다. 둘째 연인이나 아내와 여행을 가는 것도 좋다. 서로 너무나 익숙해서 생기는 '심리적 피로(Psychological Fatigue)'인 권태감을 떨쳐버리기에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에 있다. 셋째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해보자. 남자들은 섹스 파트너가 바뀔 때 성행위의 강도가 높게 유지되는 '쿨리지 효과'라는 본능을 갖고 있다. 매번 새로운 상대를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파트너의 변신은 뉴페이스를 만난 듯한 '유사효과'를 창출한다. 긍정적인 사고와 과감한 변신으로 가을 타기를 극복해보자.
김성미 마음과마음 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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