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추억의 공간]동네 목욕탕①

"탕 안이 북적댈 때도 있었는데…"

"인근에 있던 남산탕'봉선탕'대호탕'청하탕이 모두 문을 닫았고 이젠 저희 수정목욕탕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4,5년 후엔 일대의 재개발로 문 닫을 판입니다."

대구 중구 남산 4동 수정탕은 올해로 34년 됐다. 외관도 1974년에 목욕탕 전용 용도로 지어진 2층 콘크리트 건물 그대로다. 그동안 바뀐 게 있다면 옷장과 녹슬 때마다 교체한 배관이 고작. 이 때문에 수정탕은 70년대 목욕탕의 전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하루 고객이 15명 정도 될까 모르겠어요." 색 바랜 요금표가 붙어져 있는 한 평 남짓한 수부실. 주인 김재구(61)씨가 캐시밀론 담요를 깔고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입욕표도 발부되지 않는다. 그나마 남탕은 주말에만 손님을 받는다.

뽀얀 수증기가 자욱한 대신 썰렁한 한기마저 감도는 26평짜리 남탕 안. 앉은뱅이 의자 3개, 물바가지 6개, 샤워기 3대, 벽면 겉으로 드러난 배관을 따라 16개의 수도꼭지가 달려있고 어른 서너 명이 들어앉으면 꽉 찰 것 같은 남탕엔 물이 없다.

"10여 년 전 사우나가 생겨나면서 고객이 줄었고 또 4년 전부터는 일대에 고층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해 집에서 샤워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찾는 이가 없어 남탕은 주중엔 운영하지 않고 있어요." 하루 1명도 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종일 뜨거운 물을 탕에 채워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정탕은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호황을 누렸다. 특히 섣달그믐날이면 좁은 남탕에 30여명의 목욕객들이 북적됐다는 게 김씨의 회상이다.

옥상 물탱크에 수돗물을 모은 후 보일러로 데워 욕탕에 물을 공급해야 하는데 행여 수돗물 공급이 여의치 못할 경우엔 입욕을 중단하고 물을 모은 후 손님을 받기도 했다. 그 사이 이미 입욕한 손님들은 추위에 떨어야 했다.

"개중엔 '내가 1년에 2번을 이 집서 목욕하는데 서비스가 이렇게 밖에 되지 않느냐'며 불평하거나 요금을 깎아달라는 사람들도 있었죠."

남탕 탈의실의 30개의 옷장도 열쇠가 걸린 채 당연히 모두 비어있다. 구석 한 켠에 놓인 제작연도가 20년을 넘은 아날로그 체중기의 바늘이 지난 세월을 말해주듯 0에 멈춰져 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요금이 120원이었는데 현재 요금은 지난해 가을에 올린 것으로 어른은 3천500원, 어린이는 2천원을 받고 있습니다. 70세가 넘으면 3천200원을 받죠." 수정탕을 이용하는 고객들은 제각각 목욕용품을 갖고 와야 한다. 여탕이든 남탕이든 수건'비누'삼푸 등 비치물건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년 단골이 드나드는 추억이 어린 수정탕이기에 김씨는 매일 오전 5시 30분에 탕에 더운 물을 채우고 오후 8시에 탕을 말끔히 청소하는 일을 멈출 수 없다. 재개발로 인해 목욕탕 건물이 허물어지기까지는 말이다.

■수정탕 주인 김재구씨

"지하수가 아닌 수돗물을 45℃가 넘지 않는 범위에서 데워 탕에 공급하기 때문에 우리 목욕탕 물이 좋다고 칭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팔순노모와 30년을 훌쩍 넘게 수정목욕탕을 운영해 온 김재구씨는 목욕탕 수질에 관한 한 지금도 어느 사우나 못지않은 수질을 자랑하고 있다.

"사실 수돗물은 음용을 기준으로 소독과 미생물 처리에서 국가적 기준에 맞춰졌기 때문에 수질은 좋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여기에 위생관리도 월 1회씩 정기적으로 실시하며 매일 청소와 환기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목욕문화를 비롯해 주변 상황이 바뀌면서 내부시설의 리모델링이나 개축의 욕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워낙 여건이 따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을 정도이다.

"저희 목욕탕은 단순히 목욕탕이라기보다 인근의 나이 든 할머니들의 경로당 역할도 합니다. 모두 단골이자 어머니의 친구인 관계로 음식을 해서 나눠먹기도 하며 손님들이 먹을거리를 장만해 오기도 합니다."

수정탕의 월 수입은 대략 150~160만원 정도. 이 돈에서 겨울철 기준 월 수도세 30여만원과 보일러 기름값 60여만원을 제하면 실제 수입은 70~80만원선이다. "어찌보면 용돈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목욕탕을 찾는 단골이 있어 반가울 따름 입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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