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700자 읽기] 스탑 더워

이상번 지음/고요아침 펴냄

이상번 시인은 선비의 낯빛과 단정한 말씨를 가졌다. 그런데 그의 시집 '스탑 더워'에 실린 시들은 시인의 평소 모습과 사뭇 다르다. 거칠게 항의하는 목소리, 욕설을 주저하지 않는 입…. 응어리진 분노가 용암처럼 뜨겁게 흘러내린다.

시집 '스탑 더워'를 두고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그의 시집 원고를 통독하고 나서 나는 평소 그의 독실한 행동거지에 깜빡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무엇보다도 뜨거운 가슴과 여린 마음을 가진 훌륭한 시인이었던 것이다. 시집 한 권을 단숨에 읽은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고 평가했다.

'폭력의 의미' '광장' '철없는 노동자의 죽음' '호미자루' '대동제 차림표' 등 시집에는 시인 이상번의 실천적 삶의 영상이 차곡차곡 담겨 있다.

이상번은 자신의 이상을 쏟아낼 뿐 단속하지 않는 듯 하다. 그래서 그 목소리는 울분에 차 있고 투박하다. 그러나 이종암 시인은 "이상번의 시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라. 그의 시 '죽심' '소심' '벌초' '망천 아지매'를 읽으면 그가 천상 서정 시인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카랑카랑한 선비의 시선과 선정을 지향하는 불자의 시선, 불의에 맞서 외치는 항의의 목소리와 자신의 내면을 조용히 살피는 시 세계를 두루 만끽할 수 있는 작품집이다. 142쪽, 8천원.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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