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을 때의 빈부격차는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극복될 수 있다. 하지만 은퇴 후의 빈부격차는 영원히 메울 수 없는 것이다."
선진국 사람들은 젊어서부터 '은퇴 이후'를 대비한다. 노인복지제도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돼 있는데도 말이다.
그들은 은퇴 이후를 '아름다운 인생 2막'으로 보고 있다. 젊은이들의 은퇴 준비가 철저한 이유다.
선진국 노년, 계명대 재무상담클리닉센터(센터장 조현정 계명대 교수)의 도움을 받아 그 속을 들여다봤다.
◆미국, 젊을 때부터 준비한다
IT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스미스(35)씨의 하루 일과는 퇴직연금 운용수익률을 점검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입사 때부터 퇴직연금인 401(k)에 가입한 그는 주식형펀드에 55%, 나머지는 채권과 회사채에 투자하고 있다. 금융위기로 수익률이 저조하지만 기회를 봐서 주식형펀드 비중을 늘릴 계획이다. 젊기 때문에 좀더 공격적으로 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평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연봉의 6%를 401(k)에 적립한다. 회사는 그가 적립하는 금액의 절반만큼 추가로 적립해 준다. 연봉의 6% 외에 매년 8천달러를 401(k)에 추가로 불입하고 있는데 바로 소득공제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401(k) 플랜은 오늘날 미국 노동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은퇴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2005년 말 현재 전체 퇴직연금시장에서 401(k) 플랜이 차지하는 비중은 가입자 수 기준 61.8%, 자산 기준 50.3%다. 이 비율은 매우 높은 것인데 공적연금인 사회보장연금보다 그 위상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에서도 직장 은퇴플랜을 갖고 있지 못한 자영업자들과 소규모 사업체 직원들은 은퇴를 대비한 장기적인 계획을 준비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IRA(Individual Retirement Account·개인퇴직계좌)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은퇴자금 마련을 위해 정부의 세금 유예혜택을 받아가며 수입의 일부를 은퇴연금으로 저축할 수 있는 제도.
2007년 기준으로 미국 가계의 40%가 IRA를 보유하고 있다. IRA는 조기퇴직과 잦은 이직, 비정규직 근로자 증가, 연봉제 확산 등의 사회적 변화에 따라 도입된 장치로 퇴직연금 적립금을 IRA로 전환할 수 있어 많은 미국인들 사이에서 은퇴자금 마련을 위한 가장 대중적 저축수단으로 발전해 왔다.
젊을 때부터 은퇴플랜을 준비하는 미국인들에게 은퇴는 더 이상 인생의 내리막길이 아니다. 조사에 따르면 은퇴자들의 여행빈도를 국가별로 비교해 본 결과 미국의 은퇴자들이 가장 많은 여행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각지를 내 집 드나들듯 여행을 하며 인생 제2막을 활동적으로 보내고 있는 미국의 은퇴자들은 베이비 부머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노인층이다.
노년기를 '인생의 종말'로 보는 기존의 노인층과는 인생관 자체가 다른 베이비 부머 노인층들은 노년기를 '자아실현의 기회'로 생각하고 있다. 때문에 그들은 자녀에게 의지하지 않고 젊을 때부터 계획적으로 은퇴플랜을 준비한다. 또 그들은 기존 어떤 세대보다 적극적이고 막강한 소비집단으로 건강과 교육, 여가활동에 아낌없이 자신의 자산을 투자하며 인생을 즐기고 있다.
미국인들이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것은 젊을 때부터 재정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체계적으로 은퇴플랜을 준비한 덕분이다.
◆은퇴자들의 천국, 호주
은퇴 후 가장 살고 싶은 곳으로 꼽히는 호주. 호주 사람들이 은퇴생활에 대해 갖는 자신감은 무엇 때문일까?
정규직 노동자의 98% 이상이 가입돼 있는 호주식 퇴직연금제도인 강제가입형 보증퇴직연금제도(Superannuation Guarantee)가 노후를 든든히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사용주가 노동자 임금의 9%를 매년 적립, 근로자 은퇴 후에 지급하는 것이다. 9% 기여율이 낮은 것은 아니지만 갈수록 길어지는 노후생활을 준비하기엔 역부족이다.
때문에 호주의 노동자들은 고용주가 부담하는 9% 외에 스스로 수입의 일정부분을 적립한다. 평균적으로 10%에서 많게는 20%까지 자발적으로 납부한다. 고용주가 납부하는 금액을 합치면 본인 수입의 20~30%를 매년 노후를 위해 저축하는 셈이다.
든든한 노후장치를 가지고 있는 호주의 은퇴자들에게 은퇴는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덕분에 호주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은퇴자 마을이 잘 조성돼 있다. 그 숫자가 2천개가 넘는다.
은퇴자 마을은 지역사회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호주 국민들은 요양원보다는 자신의 집에서 사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함께 모여 있으면서도 자신의 집에서 생활할 수 있는 은퇴자 마을에 매력을 느낀다. 은퇴자 마을은 호주 은퇴자들이 독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서비스와 시설을 갖추고 있다.
◆연금의 나라, 독일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은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고령화 현상이 심각하다. 2035년에는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지금보다 2배 이상 늘어 전체 인구의 30%를 차지할 전망이다.
하지만 독일은 공적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으로 구성된 '3층 연금시스템'을 통해 국민들의 '은퇴 이후'를 대비시켜주고 있다. 독일의 공적연금제도는 철혈재상(鐵血宰相)이라고 불렸던 비스마르크에 의해 입안돼 1889년 세계 최초로 도입됐다. 현재 경제활동인구의 약 82%가 가입돼 있다.
공적연금은 독일 노인인구의 주된 소득원이다. 65세 이상 노인 수입의 약 78%를 차지하고 있다.
공적연금이 1층이라면 2층에는 민간기업 및 공기업에서 실시하는 퇴직연금이 자리한다. 노인인구 수입의 약 7%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의 퇴직연금은 법정연금과 달리 의무가 아니고 고용주가 노동자의 노후보장을 위해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는 노후보장으로서의 역할이 작은 편이지만 고령화 등에 따라 연금재정 부담이 가중되자 2001년 전격적으로 '리스터(Riester) 개혁'이 단행돼 퇴직연금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마지막 3층 부문은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실시하는 개인연금이 주이며 노후 수입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은 노후 복지시스템이 잘돼 있는 덕분에 은퇴자들이 막강한 소비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공적연금, 퇴직연금, 저축한 돈으로 일하지 않고도 소비할 돈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들의 나라, 일본
일본은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20.6%를 기록, 세계 첫 '초고령사회'가 됐다.
그러나 일본의 은퇴자들은 비록 직장에서는 은퇴했지만 여전히 사회의 중심축으로서 인생의 후반기를 새롭게 개척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전체 개인금융자산 중 75%를 60세 이상 노인들이 보유할 정도로 노인이 부자다. 우리나라는 60세 이상 노인들이 가지고 있는 금융자산이 전체 개인 금융자산의 20%에 불과하다.
공적연금과 퇴직연금 등 안정된 연금제도와 저축으로 상당한 자산을 보유, 베이비 부머인 단카이 세대는 은퇴했지만 사회, 경제적으로 막강한 파워를 발휘하고 있다.
일본 단카이 세대들은 은퇴를 했지만 자국 내 온천여행 및 해외여행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또 소비성향이 높아 일본 소비시장에서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한다. 여행사들의 주요 타깃일 뿐만 아니라 골프장, 스키장, 헬스클럽 등 레저업계도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며 단카이 세대를 기다린다.
일본 은퇴자들이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반세기 전에 도입된 연금제도와 저축 등의 은퇴플랜을 꾸준히 유지했기 때문이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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