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불우아동 돕는 '꿈나무집 할배' 박정구 옹

▲ 꿈나무집 할배 박정구씨는
▲ 꿈나무집 할배 박정구씨는 "절망에 빠지려는 아이들을 건져내는 게 내 몫"이라며 영원한 '할배'로 남고 싶다고 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꿈나무집'에서 자라 제 길을 찾아간 아이들을 보면 그보다 큰 보람은 없습니다."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대구 북구 노원동의 한 주택가. 물어 물어 찾아간 '꿈나무집'은 오랜 주택과 공장이 뒤섞인 동네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4층짜리 건물의 1층은 유료 어린이집, 2~4층은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 20명과 '꿈나무집 할배' 박정구(77)씨가 10여년째 살고 있는 보금자리.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로 꿈나무집은 시끌벅적했다.

"호떡 판 돈으로 장학금 내놓는 할머니들 심정을 알아요? 가정형편 때문에 꿈조차 갖지 못하는 아이들이 너무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박씨가 꿈나무집 문을 연 것은 1991년. 북구의 한 새마을금고 이사장으로 일하던 그는 예순이 되던 그해 불우한 청소년들을 위한 복지시설을 짓기로 결심했다. 새마을금고에서 1억8천만원을 내고 대구시와 북구청에서 1억1천만원씩 지원받아 현재의 집을 마련했다. 마침 저소득 부자(父子)세대를 위한 복지시설 증설에 정부가 관심을 갖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한창 배울 나이에 배움을 이어가지 못하면 평생 한이 됩니다. 저 역시 6·25 때문에 학업을 중도에 포기했어요."

그는 평온(?)하게 노년을 보낼 수 있었지만 "주변 환경 때문에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을 보고는 내 운명이라 생각하고 이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18년간 꿈나무집을 거쳐간 아이들은 모두 81명. 초창기에는 부모 한쪽이 사망한 경우가 많았지만 해가 갈수록 이혼한 부모들이 양육을 기피하면서 맡기는 사례가 더 많아졌다. 박씨는 자식조차 내던지는 몹쓸 세태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래서 마음이 아주 많이 쓰인다고 했다.

박씨가 사는 집은 자전거로 5분 거리에 있다. 하지만 아침식사를 하고 옷 갈아입으러 잠시 들를 뿐, 대부분 시간을 꿈나무집에서 보낸다. '집'에는 어른이 있어야 아이들이 바르게 자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취재진이 찾아간 날에도 학교에서 돌아온 초교생 3명이 자유롭게 놀고 있었다. 컴퓨터 게임을 하고 텔레비전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정해진 시간을 넘기면 할배의 꾸지람이 뒤따랐다. 현재 꿈나무집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모두 20명. 초교생 4명을 제외하곤 모두 중고생이다.

박씨는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게 아니라고 했다. 연간 운영비 3천만원 중 북구청에서 지원하는 60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원대새마을금고에서 연간 1천만원, 나머지는 300여명의 후원자들이 몇 천원에서 몇 만원씩 매달 후원하고 있다.

박씨는 지난해 12월 초 결혼한 김모(31·직업군인)씨가 더할 수 없는 기쁨이라고 했다. 김씨는 생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재혼하면서 꿈나무집에 맡겨져 박씨의 보살핌 속에 자라났다. 김씨처럼 꿈나무집을 거쳐간 많은 이들이 명절 때면 다시 박씨를 찾는다. 박씨는 아이들을 향한 당부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나만 왜 이럴까', 상황만 탓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뜻이 있는 곳에 반드시 길이 있고, 마음먹으면 하늘이 돕습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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