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비디오 시대에 보내는 헌사…영화 '비 카인드 리와인드'

"비디오 가게가 뭐예요?"

얼마 지나지 않아 자녀들이 이렇게 물을 것이다. 한때 '영화 보급소'로 북적이던 동네 비디오가게가 '그때를 아십니까?'와 같은 추억 속의 풍경이 될 지도 모른다. 비디오 반납하라는 독촉전화도, 비디오 감아 반납하라는 가게 주인의 힐난도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허물어져가는 오래된 비디오 대여점이 있다. 사장 플레쳐(대니 글로버)는 개인적인 일로 여행을 떠나면서 가게운영을 점원 마이크(모스 데프)에게 맡긴다. 떠나면서 말썽장이 제리(잭 블랙)를 가게 안에 들이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그의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된다.

발전소에 테러를 가하려다 감전 사고를 당한 제리가 가게에 들어오면서 진열된 비디오테이프의 내용이 모두 지워진다. 고객의 주문에 둘은 카메라를 들고 직접 영화를 찍는다. '로보캅' '러시아워2'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킹콩' '고스트 버스터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등 명작들을 패러디한 조악한 영화들이다.

그러나 제리의 독특한 재해석과 우스꽝스런 연기로 인해 영화들이 불티나게 대여된다. 곧 허물어질 대여점에 사람들이 북적이고, '짝퉁' 영화는 사람들을 열광시킨다.

영화 '비 카인드 리와인드'(Be Kind Rewind, 2007)는 비디오 시대에 보내는 '시네마 천국'과 같은 영화다. 제목은 '비디오를 감아 반납하세요'의 미국식 표현이다. DVD에 밀려 사라지는 VHS에 대한 감사와 찬사, 그리고 아련함이 오래된 골목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감독은 '이터널 선샤인'을 만든 미셀 공드리 감독이다. 사랑의 기억을 지워버린다는 독특한 이야기로 깊이 있는 세계관을 보여준 감독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미셀 공드리보다는 잭 블랙을 위한 영화이다. '스쿨 오브 락''킹콩' 등의 영화를 통해 괴짜로 이미지를 굳힌 배우다. 뚱뚱한 몸매에 독설, 속사포 같은 유머로 관객들에게 재미를 선사한다.

이 영화에서는 사이코적인 증상이 더 심하다. 두통의 원인이 전기회사의 음모라고 믿고 밤에 발전소에 침투하다 대형 사고를 치게 된다. 비디오의 알맹이가 없어졌다고, "원래 20분짜리 영화라고 우기면 돼!"라거나, 쓰레기 더미에서 건진 잡동사니를 몸에 걸치고 로보캅 흉내를 내는 모습은 틀림없이 정상적이지는 않다.

잭 블랙의 좌충우돌식 해프닝과 소동이 영화의 웃음 포인트다. 특히 놀이터의 기구로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연출하거나, 도시 그림 위에서 '킹콩'의 포효를 그리는 등 얼렁뚱땅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포복절도한다.

그러나 이런 비현실적인 톤 아래 영화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다. 영화는 감독이나 제작사의 것이 아니고 언제나 관객의 것이다. 관객에 의해 다시 쓰여 질 수 있고, 재해석된 영화에 열광할 수 있다는 영화의 본질적 효용가치를 얘기한다.

폐업을 앞둔 비디오가게에서 갖는 마지막 상영회는 눈물을 훔쳐낼 만큼 감동적이다. 길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비디오가게에서 비춰지는 영화를 보고, 웃고 우는 장면은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시네마 천국'의 비디오 버전이다.

'맨 인 블랙' '반지의 제왕' '라이온 킹' 등 고전 영화 속 캐릭터를 연기하는 잭 블랙의 매력은 놓칠 수 없다. 미셀 공드리의 내공은 엿보이지 않지만, 동네 비디오가게에 대한 추억을 가진 영화팬이라면 가슴 따뜻하고 훈훈하게 볼 수 있는 코미디영화다. 100분. 12세 관람가.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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