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이 최대의 경쟁자였던 트로츠키와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고도의 演出(연출)이었지만-자신을 낮췄기 때문이었다. 赤軍(적군)의 창설자로 반혁명파와의 내전을 승리로 이끈 트로츠키는 경력이나 재능에서 스탈린이 넘볼 수 없을 만큼 출중했다. 스탈린이 그런 트로츠키를 이긴 것은 레닌의 충실한 후계자를 자처했기 때문이다.(그러나 레닌은 스탈린은 야비하고 권력을 함부로 휘두를 것이라며 제거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스탈린은 권력투쟁에서 이기기 위해 레닌의 사상을 교묘하게 왜곡하면서도 절대로 레닌을 넘어서려 하지 않았다. 이를 통해 스탈린은 자신을 레닌사상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유일한 당 지도자로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
야심만만했던 트로츠키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혁명 후 피폐한 경제의 회복을 위해 레닌이 도입한 신경제정책(NEP)에 반대하고 식량생산의 사회화와 대규모의 급속한 공업화를 주장했다. 그는 또 혁명에서 레닌이 수행한 역할에 대한 신화를 수정함으로써 레닌주의와 멀어져 갔다. 그는 혁명에 쓴 편지에서 "현재 레닌주의의 모든 체계는 거짓말과 허위에 서 있다"고 했다. 이 편지는 스탈린에 의해 공개됐고 그것으로 모든 것은 끝났다.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와 린뱌오(林彪)도 같은 길을 걸었다. 마오쩌둥(毛澤東)과 대장정 동지였던 저우는 철저히 자신을 낮추고 드러내지 않았다. 그 덕에 문화혁명의 광풍에서 살아남아 존경받는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반면 軍權(군권)을 쥐고 있던 린뱌오는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2선 후퇴한 마오의 공백을 차지하려다 실패, 소련으로 탈출하던 중 몽골 초원에 추락사하는 운명을 맞았다.
지난 1'19 개각 및 차관 인사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MB) 측근의 차관 기용이다. 이를 놓고 '차관정치' '왕차관' 등의 말이 나오고 있다. 이들이 앞으로 장관 못지 않은 역할을 할 것이란 뜻이다. 그러나 위계질서의 顚倒(전도)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조직의 생리다. 장관보다 더 큰 그림자를 드리우는 차관의 존재는 원활한 국정운영을 가로막을 수밖에 없다. 2인자가 지녀야 할 첫 번째 덕목은 囊中之錐(낭중지추)가 되지 않는 것이다. 주머니를 뚫고 나오는 송곳은 모든 이에게 거북스럽다. 자기를 낮추고 드러내지 않는 것이 자신을 더 돋보이게 할 수도 있다.
정경훈 정치부장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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