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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내 몸에 맞지않은 한복저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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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콧노래를 흥얼흥얼 부르며 친구들과 집 앞마당 땅에다 사선을 긋고 손을 마주잡고 폴짝폴짝 뛰어 놀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노는 아이들을 쳐다보며 동심에 젖을 나이가 되어버려 참 아쉽다. 설날아침 우리 집은 할아버지댁에 세배를 하러가려고 차려입기에 아침 일찍부터 바빴다. 초등학교 6학년, 사춘기에 접어들어 한창 멋 부리고 예민할 때이다. 그러니 작은 한복을 입으려니 아침부터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다. 어릴 때 맞춘 한복을 몇 해씩이나 입으려고 하니… 처음부터 내 몸에 맞지 않는 큰 한복을 엄마는 구입하셨다. 내 한복저고리는 조끼저고리가 아니고 당의저고리로 사극드라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모양으로 되어있어 치마가 짧아도 덧대서 입을 수 있는 커버력이 있는 한복이었다. "초등학교 때만 한복 입고 절하면 된다. 올해만 참고 입어라" 하시며 억지로 입히시면서 엄마가 뒤 끈이 풀린다고 꽉 동여맨 한복치마가 문제였다. 너무 타이트한 탓에 가는 길에 내가 조금 헐겁게 다시 묶어 맸다.

할아버지 댁에 도착하여 공손히 세배를 드리고 일어날 찰나에 한복치마가 발에 밟혀 그만 훌러덩 하고 치마가 풀려 바닥에 흘러내렸다. 가족 모두 당황해하면서도 웃음바다가 되어버렸다. 나 또한 순간 당황해 어쩔 줄을 모르고 '엄마야' 하면서도 한 손에는 세뱃돈을 또 한 손은 치마를 움켜잡고 방을 나오면서 엄마를 원망했다. 역시 엄마는 나보다 한 수 위였다. 내 원망을 듣기도 전에 엄마의 한마디 "올해는 세뱃돈 안 거둬갈게" 이 한마디에 조용히 아무 일 없는 듯 그냥 넘어갔다.

그 덕분에 그 해에는 짭짤한 세뱃돈 수익이 있었다. 설날 때마다 가족들과 담소를 나누면서 그때의 일을 꺼내시며 웃으시곤 한다.

이제는 내가 조카들에게 세배 받고 세뱃돈 줄 나이에 찼다. 요즘 경제불황으로 아마도 10년 전의 세뱃돈 금액과 정비례가 될지도 모르겠다.

강민정(대구 남구 봉덕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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