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사진과 영혼

내 수첩 속에는 오래된 사진 한 장이 있다. 할아버지랑 함께 찍은 흑백사진이다. 그 사진을 보면 사진 찍던 날이 기억난다. 유난히 사진을 찍기 싫어하시는 할아버지를 간신히 카메라 앞에 모시고 가족 모두 함께 웃으면서 그날의 모습을 사진 속에 담았다.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할아버지가 손사래를 치시면서 사진을 찍지 않겠다던 모습이 떠오른다. '사진을 찍으면 영혼을 빼앗긴다'는 속설(俗說)을 굳게 믿으셨던 할아버지다. 어릴 적에는 그런 말씀을 하시는 할아버지가 미개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흑백사진을 넘어 컬러로 또 움직이는 사진이 되어 안방까지 들어와 마음을 홀리는 지금은 그 말을 믿고 싶다.

옛 어른들은, 물에 비치는 얼굴도 자주 들여다보지 말라고 했다. 그것은 거울이 없던 시대의 말이라, 나르시스처럼 외모에 스스로 반하여 자신을 망치는 일은 하지 말라는 경고였을 것이다. 일렁이는 물결에 비친 얼굴도 자주 보면 자신을 망친다고 걱정했는데 사진 속에 담아두고 자꾸 본다면 영혼이 빼앗긴 사람처럼 허물어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이제 와서 생각하면 자신의 사진만 보는 일은 차라리 괜찮았다. 오늘 나는 타인의 사진에 취해 영혼을 버렸기 때문이다.

광고에 등장하는 젊은 부부가 있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이들, 그 나이의 부부가 가질 수 없는 넓은 정원이 딸린 집과 비싼 고급 승용차를 갖추고 살면서 시대의 주인공이 되어 행복한 가족의 모델로 보여주니 그들에게 대비되는 나는 너무 가난하다. 또 텔레비전에 비치는 잘생긴 남자들과 어여쁜 여인들. 모두가 거리에서는 만나기 쉬운 사람들이 아니다.

단지 사진일 뿐인 가짜들이 힘겹게 살아가는 진짜 사람을 누르고 불행하게 만든다. 영상 속의 사람들은 모두 발랄하고 즐거워 보이는데 내가 사는 진짜세상이 오히려 생기 없이 우중충하다. 현실세계가 가짜를 좇으면서 가짜의 그림자가 되어 허무하게 시들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 속의 이야기에 집중하여 울고 웃느라 나를 둘러싼 진짜 환경은 자주 잊어버린다. 오늘도 TV로 미국대통령의 소식을 본다. 형제들의 안부는 모르면서 만 리 밖의 일들을 먼저 알게 된다. 나는 할아버지를 미개인쯤으로 여기고 카메라 앞에서 미소를 짓는 순간부터 이미 사진의 노예가 되었다.

신복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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