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2년 영국 설리스버리 교구 주교가 된 라이오넬 우드빌은 당시 옥스퍼드대 총장이었다. 그의 가문은 영국 요크 왕가의 외척이었다. 부친인 리처드 우드빌은 당시 영국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로 불린 리버스 백작이었고, 누나 엘리자베스는 국왕 에드워드 4세와 재혼했다. 여러모로 부족함이 없던 라이오넬 주교에게 역사에 남는 기록이 하나 더 얹혀졌다. '세계 최초의 명예 박사'(honorary degree)가 그것이다.
이를 시초로 16세기 후반부터 유럽의 대학에서 명예 학위 제도가 보편화됐다. 특히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대의 경우 영국 왕실에서 대학을 방문하면 명예 학위를 주는 게 관례였다. 1605년 제임스 1세가 옥스퍼드대를 방문했을 때 수행원 43명에게 한꺼번에 명예 예술학 석사 학위를 준 적도 있다. 이에서 보듯 점차 명예 학위의 권위와 명성이 퇴색됐다. 왕실과 귀족, 정'재계 인사, 교육자 등 특권층에 편중되거나, 사회적으로 공인받지 못한 인사에게 학위가 남발됐기 때문이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1985년 옥스퍼드대에서 명예박사 학위 수여를 거부당하는 굴욕을 맛봤다. 옥스퍼드대 출신 총리에게는 명예박사 학위를 주는 게 관례였지만 대처의 경우 재임시 대학 교육기금 예산을 삭감했다는 이유로 거부된 것이다. 명예박사 학위를 아예 주지 않는 대학도 있다. MIT는 처칠 영국 총리, 작가 살만 루시디에게 예외적으로 명예 교수직을 준 적은 있지만 명예 학위는 한 번도 수여하지 않았다. 미 코넬대나 스탠퍼드대, 런던정경대도 그렇다.
어제 정몽준 의원의 전남대 명예 철학박사 학위 수여식이 학생들의 반발로 취소됐다. '5'18 민주화운동을 이끈 전남대가 한나라당 의원에게 명예 학위를 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이유에서다. 정 의원도 반대가 심하자 고사했다는데 2007년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대학마다 명예 학위에 대한 규정은 있지만 통상 총장 직권으로 결정된다고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무려 17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명예 학위를 통해 대학, 지역사회와 인연을 만들고 서로 돈독히 교류한다면 무조건 백안시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무분별할 경우 소위 '명박 정치'라는 소리마저 나오게 된다. 명예와 권위를 생각해 엄격해야 할 명예 학위가 되레 명예를 깎아내리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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