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박물관이 살아 있다

대구 IT기술 높고 교통 편리, 세계적 자연사박물관 조성을

25년 전 난생처음 런던으로 출장 갔을 때 여러 가지 느낀 것이 많았지만 그 중 대영박물관에서 가졌던 감동과 흥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책에서만 보아왔던 오천 년 전의 미라가 바로 내 눈 앞에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하였으며 나는 잠시 오천 년 전으로 되돌아가 그가 살았던 세상을 상상해 보았다. 그 이후 해외에 갈 때마다 그 지역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아가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내가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즐겨 찾는 이유는 역사 속에 미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역사(History)는 말 그대로 His story, 그들의 이야기이다. 다양한 그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나는 미래(Mystery)의 나의 이야기 My story를 꿈꾼다. 또, 그곳에 전시된 수백, 수천 년 전의 이야기들을 보면서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 불과 100년도 살지 못하는 나는 절대로 늙을 수 없는 영원한 젊은이임을 깨닫는다. 덕분에 나는 육체의 나이와 관계없이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과감한 도전을 하고, 어떠한 시련도 이겨낼 수 있는 젊은 에너지로 나의 마음을 채운다.

얼마 전 우연히 '박물관이 살아있다'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 속 박물관에서는 밤마다 티라노사우루스 공룡이 살아 움직이고 수많은 로마의 병정들을 만난다. 뉴욕에 있을 때 일년에 2, 3번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바로 이 영화의 무대인 뉴욕 자연사박물관을 찾았다. 센트럴파크의 멋진 풍경과 어우러진 이 박물관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공간이다. 영화를 보면서 문득 나는 대구에도 이런 박물관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한다면 과거만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아니라 미래까지 체험할 수 있는 박물관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강점인 IT를 활용하여 과거와 현재, 그리고 백 년, 천 년 후의 생활과 지구의 변화를 상상하게 하는 자연사 박물관이라면 세계적으로도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대구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올 수 있는 뛰어난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다. KTX의 개통과 사통팔달의 고속도로망의 중간에 있어 전국 어디서나 1, 2시간 안에 닿을 수 있고 대구국제공항은 일본, 중국과도 1, 2시간 안에 연결된다. 영남권신공항이 들어서면 외국과의 접근성은 획기적으로 높아진다. 이를 활용한다면 대구의 자연사박물관은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아직까지 뉴욕 자연사박물관과 같은 규모의 자연사박물관은 아시아에 없다. 이제까지 시도된, 그저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이왕 하려면 세계최고를 만들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도 대상으로 하면 어떨까? 세계적인 박물관을 꿈꾼다면 국수주의적인 접근보다는 인류 보편적인 입장에서 기획되는 것이 좋을 것이고, 박물관이 그저 교육적(Education)인 역할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오락(Entertainment), 그리고 참여(Excitement)를 경험하는 공간, 즉 살아있는 박물관이 되면 더 많은 감동과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막대한 초기 투자비용이 부담이 될 수 있겠지만 올바른 투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쇠퇴해가던 도시인 스페인의 빌바오는 구겐하임미술관 하나로 세계적인 유명도시로 거듭났다. 관광객들이 몰려 오면서 침체 일로를 걷던 지역경제도 다시 살아났다. 이런 박물관이 하나 생기는 것은 그저 하나의 건물이 들어서는 것이 아니다. 관련 분야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모이고, 지역 대학이 발전하고, 인재가 모이고, 이벤트가 열리고, 관련 시장이 생기고,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도시 브랜드가 올라간다. 음식점과 숙박시설, 쇼핑센터 등에서 소비하는 돈은 고스란히 그 지역의 부로 축적될 것이다. 자연사박물관 속에서 본 인류의 발자취는 상상에서 출발했고 상상으로 발전해 왔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시킨 사회만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 세상을 이끌어왔다. 그러나 시대의 주인공 자리에 한때 있었더라도 잠깐 자만하고 있는 사이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는 역사를 우리는 박물관에서 발견한다. 그것이 국가이든, 도시이든, 생물이든…. 과거에만 머물지 않고 미래를 상상하게 하여, 그래서 어떻게 오늘을 살고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줄 살아있는 박물관을 얘기하는 것은 이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너무 큰 사치일까?

도성환(홈플러스테스코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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