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하여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초등학생도 외는 시조다. 이 시조를 지었던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이 청나라서 돌아와 은거했던 곳이 이 소산마을이다. 청음은'청나라를 멀리하고 싶다'는 의미로 거주했던 집도 청원루라 했다. 또한 소산은 조선후기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세를 가지고 세상을 쥐락펴락했던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총본산이기도 하다. 이 마을 신김 후손들이 조정에 진출, 60여년 왕권을 능가하는 실권을 행사했던 게다.
소산마을의 원래 이름은 금산촌(金山村)이었다 한다. 청음이 낙향하여 거주할 때 그 이름이 너무 화려하다 해서 검소한 뜻으로 소산으로 고쳤다 한다. 주위의 나지막하면서도 부드러운 산세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 하겠다. 그렇다고 힘이 없는 것은 아니다. 들판에서 솟았기에 산중의 그 어느 산 못지않은 힘을 가진다.
소산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마을 앞, 청룡 끝자락에 지어진 삼구정이다. 정자인 삼구정은 도톰한 언덕에 위치한다. 엎어놓은 가마솥, 거북의 등처럼 생긴 이러한 땅을 풍수에선 돌혈(突穴)이라 부른다. 정자 터의 제1요건은 시원하고도 풍광이 좋은 곳이다. 절경에 위치한단 얘기다. 이러한 곳은 일반 살림집 터로 부적합하다. 오며가며 땀을 식히고 답답한 마음을 푸는 곳, 그러기에 이곳에서도 정자가 섰다.
마을이나 묘의 혈처는 주맥(主脈)을 탄다. 주맥으로 가장 왕성한 기운이 내려오기 때문이다. 소산마을의 중심, 높직한 언덕 위에 구김의 종택인 삼소재가 있다. 이 마을의 혈처다. 증명이라도 하듯 구불구불 이어져 이 집으로 들어오는 용맥은 가히 일품이다. 얼핏 보아서도 확실히 살아있는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그만큼 힘이 넘친다.
산을 타고 온 지기는 물을 만나면 멈춘다. 그러기에 그 안의 땅이 명당이 되는 것이다. 산과 물의 조화, 그 조화가 걸출한 인물을 낳는다. 소산마을이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세다. 꽉 짜인 주위 산세에 마을 앞으론 매곡천이 흐른다. 풍수이론에 딱 들어맞는 지형지세인 셈이다.
조선 8대 명당, 명당 중의 명당으로 꼽는 여덟 기의 묘다. 그 중 하나가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에 있는 김번(金■) 묘다. 풍수학계에선 옥호저수형(玉壺貯水形)인 이 묘가 워낙 명혈(名穴)이라 신안동김씨가 조선후기 명문거족으로 클 수 있었다고 보기도 한다. 특이하게도 이 묘는 자리를 만들고 다시 솟아올라 본신안산(本身案山)을 만든다. 풍수에선 이런 안산을 가진 묘 후손들 중에 권력가가 난다고 본다. 김번은 김상헌이 중건한 청원루를 처음으로 건립한 이이기도 하다. 하국근 희실풍수·명리연구소장 chonjjja@hanmail.net
▨ 소산마을=행정구역으론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다. 병자호란 때 척화주전론의 거두였던 청음 김상헌이 청나라서 돌아와 은거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 마을은 본관과 성씨가 같으면서도 시조를 달리하는 구·신 두 안동김씨 가문이 함께 사는 동족마을이다. 구안동김씨의 종택인 삼소재(三素齋)와 신안동김씨의 종택인 양소당(養素堂), 김상헌이 거주했던 청원루(淸遠樓) 등 문화재로 지정된 고택들이 즐비하다. 마을 앞 정자인 삼구정(三龜亭)엔 고인돌로 추정되는 3개의 돌이 있어 유구한 마을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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