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도 어느덧 물러나고 따스한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이 창문으로 흐르자, 겨우내 움츠렸던 음악에 대한 나의 감수성도 다시 기지개를 폈다. 내친 김에 휴일의 즐거움중 하나인, 음반 매장에서 시간을 보내며 몇 장의 음반을 골랐다. 클래식 음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진지한 사진 대신, 자기 나라의 국기로 디자인된 점퍼 차림의 젊은 오케스트라가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신나게 연주하는 사진의 음반이 눈길을 끌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1981년생의 젊은 마에스트로, 구스타보 두다멜과 베네수엘라의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Fiesta'란 앨범이다. 조금 생소한 남미 음악가들의 작품이 담겨 있는데 유럽풍의 클래식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났다. 세계 음악계에 혜성같이 나타난 두다멜 역시 베네수엘라 출신이며 올해부터 향후 5년간 LA 필하모닉을 이끌어갈 최연소 음악 감독으로 유명하다. 이 젊은 마에스트로가 유명해진 이유는 나이 때문이 아니라 바로 빈민가 출신이라는 점과 그가 받았던 '엘 시스테마(El Sistema)'라는 음악교육 프로그램 때문이다. 그는 소위 엘리트 음악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했으며, 그의 분신과 같은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젊은 음악도들 대부분도 '엘 시스테마' 의 수혜자들이다.
베네수엘라의 경제학자이자 음악가인 아브레우 박사는 33년전 범죄와 마약의 유혹에 빠진 빈민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낡은 악기를 무상으로 나눠주며 음악 교육을 시작했다. 10여명이 차고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정부가 나서서 악기를 주고 음악을 가르치는, 발전된 '엘 시스테마'로 약 30만명이 음악 교육을 받고 있다. '엘 시스테마'를 거쳐 간 청소년은 80만명에 이르고 현재 이들을 중심으로 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등이 800여개에 이른다. 마약과 알코올, 범죄에 익숙하던 빈민가 청소년들이 음악을 통해 베네수엘라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학교의 입시 위주 교육으로 음악 수업은 사설 학원이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특히 경제난으로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음악 교육의 기회는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사회의 책임과 공교육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엘 시스테마'가 점점 세계 속에서 잔잔하면서도 강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고, 최근 우리나라 문화계에서도 '엘 시스테마'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한국식으로 접목시키려는 노력과 실천이 확대되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국 공교육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한 최근 연설에서 한국 공교육을 예로 들었다. 공교육이건 음악 교육이건 나라의 미래가 걸린, 교육에 관한 벤치 마킹은 국가의 자존심이나 국경도 점점 줄어들게 하는 느낌이다.
성기혁(사랑이 가득한 치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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