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고법 기능직 공채, 전문대 출신 세아이의 아빠가 합격 '화제'

"노력하면 누구나 할 수 있죠."

지난달 말 대구고등법원에서 기능10급 관리원 공채시험이 치러졌다. 청년실업을 반영하듯 2명 모집에 906명이 몰렸다. 하지만 정작 놀라운 것은 453대 1의 경쟁률이 아니었다. 지역 한 전문대학 출신자가 자신의 이름을 합격자 맨 앞에 올렸기 때문. 대구고법 관계자는 이번 공채에 서울대, 연·고대 등은 물론이고 박사 학위 소지자도 대거 지원했다고 밝혔다.

18일 오후 연수를 마치고 대구지법 총무과로 발령난 허환주(31·사진)씨였다. 젊은(?) 청년이 아니라 세 아이의 아버지였다.

그는 2002년 영진전문대 사회복지과를 졸업하고 지난 6년간 갖은 고생을 했다고 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같은 과 졸업생들이 대부분 가는 사회복지사로 사회에 첫발을 들여놨다. 4년 동안 성보재활원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했지만 공무원이 되고 싶었던 그는 부인과 두 아이를 둔 가장이라는 부담을 뒤로하고 학원에 등록했다. 그는 "지금 생각하면 당시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던 아내가 제 결정에 따라준 게 너무 고맙다"고 했다.

2년여 시간 동안 허씨는 경찰직·교정직·관세직·공안직 공무원시험을 치기 위해 서울, 부산, 인천 등 전국을 누볐다. 스무번이나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그동안 컴퓨터, 보일러 관련, 합기도, 대형·특수차량 운전면허 등 9개의 자격증을 땄지만 취업이 쉽지 않았어요. 그동안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모은 돈도 바닥났고 조급증만 늘더군요."

행운의 여신은 셋째 아이가 생기면서부터다. "지난해 아내가 덜컥 셋째 임신 소식을 알려 주기에 초조해지더군요. 이를 악물고 잠을 줄여가며 책만 팠어요." 결실은 금세 찾아왔다. 지난달 대구고법에서 낸 공채 시험으로 결국 공무원이 되는 꿈을 이뤘다.

"솔직히 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어요. 경쟁률도 높은데다 면접장에서 만난 서울 명문대 출신과 박사 학위자들을 보니 왠지 주눅이 들더군요." 그래서 합격 통보를 받고도 한동안은 믿을 수 없어 얼떨떨했다고 한다.

허씨의 요즘 업무는 신용불량자 서류 정리다. 그는 "요즘 종합민원실에서 일을 하다 보니 지역 경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했다. "예전에 시험 치러 전국을 떠돌 때도 어딜 가나 대구의 취업준비생들이 유독 많았어요. 이러다간 젊은이들이 고향을 다 떠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돼요." 허씨는 하루빨리 지역 경제가 살아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남들은 전문대생이 4년제 대학 졸업생을 이겼다고 하지만 자신감만 가지면 뭐든 할 수 있더군요. 지역민들도 지방 홀대라고 한탄만 하지 말고 용기를 내 다시 한번 일어섰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봉사하고 남을 도와주는 좋은 공무원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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