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학부모 생각] 아이가 원할 때까지…

큰애가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8년 전, 학부모총회에 참석했던 날을 잊을 수 없다. 부푼 가슴을 안고 만난 엄마들의 관심거리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 및 유능한 강사였으며 벌써 조를 짜서 움직이는 엄마들도 있었다.

솔깃해져서 듣다 보니 가슴은 콩닥거렸고, 교문을 나서는 발걸음도 자꾸만 빨라지고 있었다.

학교 다녀와서 숙제는 뒤로하고, 동생이랑 노는 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화를 냈고, 그러면서 신문 사이에 끼워오는 전단지를 뒤지며 몇 군데 전화도 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바심은 커지고, 욕심도 커져 갔다.

커진 조바심만큼 올라간 수강료에 한숨을 푹~ 내쉼과 동시에, 이번에는 화살이 남편에게로 향한다.

며칠간 나만의 지옥에 갇혀 살다가 한순간 다 내려놓게 되었다. 눈 감고 귀 닫고 나만의 방식으로 교육을 시켜보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입학하면서부터 아이들은 영어학원, 수학학원, 글쓰기 수업, 피아노, 미술, 태권도, 학습지 등 학원 스케줄대로 움직이게 된다. 그러나 남들이 한다고 따라 하기보다는 아이가 간절히 원할 때 그때 시켜주는 것이 훨씬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들어본 적 있는 '배고픔의 원리'가 생각난다.

아이에게 지식을 전해줄 때 한꺼번에 많은 것을 가르쳐 주지 않고 아이가 간절히 원할 때 전해주면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배고플 때 먹는 밥맛이 꿀맛이듯,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도 적당한 배고픔의 시기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따라서 책을 한꺼번에 많이 사줘 포만감을 느끼게 한다거나, 여러 학원을 동시에 접하게 해서 당연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같은 생각에 중학교 3학년이 된 지금까지 단 하나의 학원이나 특기적성도 먼저 강요한 적이 없다. "친구 중의 누가 다니니까 나도 다니고 싶어요"라거나 "무슨 과목이 정말 부족한 것 같으니까 제발 학원 좀 보내 주세요"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한번 다니기 시작한 학원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한, 끝까지 다녀야 한다. 변덕을 부린다든지 쉽게 포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몇 년을 그렇게 지내오니, 아이들도 적응을 한다. 국악을 전공하고자 하는 큰애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갑작스레 플루트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전공과는 상관없는 악기라면서 꼬박 1년을 버텼는데, 닭똥처럼 뚝뚝 떨어지는 눈물에 도저히 피할 방법이 없어서 학교 특기적성을 신청했다. 간절히 원했던 것이라서 그런가 진도도 빠르고, 잠시 전공을 바꿀까 하는 흔들림도 무사히 극복할 수 있었다.

그때 배고픔의 원리를 정확하게 깨달아서 지금은 작은 애한테도 적용시키고 있다.

처음에는 아이가 잘 따라올까 불안하기도 하지만 한걸음 뒤로 물러나서 한 번 더 참고 기다려봄이 어떨까.

때가 되었다고 미리 진수성찬 차리지 말고, 배고픔을 호소할 때 맛있는 밥상을 차려주는 것이 진정 아이와 나를 위한 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김홍숙(소선여중 3년 임다솜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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