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동일의 대학과 책]"대학생도 지식 생산자"

'월루비애'/김가흔(우신, 2009)

대학을 두고 생산성이 낮은 집단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이면에는 '학생은 전업 소비자, 행정 직원은 가장 고루한 관료집단, 교수의 연구 업적은 수준 이하'라는 질책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지금의 어려운 경제 여건을 생각하면 막대한 사회적 비용으로 운영되는 대학 스스로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구성원 모두가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며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학을 순수 소비 집단이라고 취급하는 데는 억울함이 있습니다. 대학은 엄연히 '인재 양성'이라는 본연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생산 기지입니다. '지식 생산'이라는 점에서도 사회적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교수 집단이 생산하는 각 분야의 전문적인 논문이나 단행본, 칼럼뿐만이 아닙니다. 학생들도 지식 생산에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남이 쓴 글에 댓글로 사족이나 다는 것이 대학생이라는 인식은 고루한 것입니다. 일반인과 다름없이 '글'을 생산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김가흔이라는 필명으로 장편소설을 집필한 김정미 학생입니다. 장장 388쪽에 달하는 그녀의 글은 내용도 재미있고, 구성도 훌륭합니다. 차 한잔의 여유가 생겨 책을 들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습니다. '월루비애'(우신, 2009), 암흑가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소설이지만 천박하지 않습니다. 독자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욕설이나 낯 뜨거운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여 대중에 영합하려는 일반 소설들과는 다릅니다. 깡패라는 주인공들에게 걸맞지 않는 고급스러운 대사로 이야기를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은 시종일관 늦출 수 없는 긴장과 은근한 욕정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제목 '월루비애'는 '달의 눈물이 슬프다'는 의미입니다. '달' '눈물', 함축성 가득한 단어입니다. 내용 중에 주인공 '차란'이 넋두리하듯, 다짐하듯 뱉어내는 대사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빛과 어둠이 있단다. 그것은 실재하는 것임과 동시에 모든 만물이 지닌 속성이기도 하지. 세상을 지배하는 지배자도 마찬가지란다. 빛의 자리에 선 자와 어둠의 자리에 선 자가 있지. 어둠의 자리에 선 자,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란다." 세상을 보는 필자의 시각이 담겨있는 내용입니다. 선악이 공존하는 사회, 극단의 선도 극단의 악도 '지배'라는 측면에서는 일맥상통한다는 의미입니다. 젊은이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일 것입니다.

필자는 주인공 차란을 통해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적룡'이라는 암흑 조직의 막내로 설정된 차란은 어둠의 지배자로 태어났으나 철저한 어둠이 되지 못했습니다. 현실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천외천'이라는 또 하나의 암흑 집단, '적룡'의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역할, 그리고 스며들 듯 가슴에 자리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그 가운데서 선택을 고민하는 그녀, 결국 눈물을 거두고 자신의 이름을 찾는 긴 여행을 떠납니다. '주어진 운명'과 '가야할 길' 사이를 방황하는 차란의 이야기는 필자 자신의 이야기이자 대다수 우리 젊은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취업이 어려운 시기, 대학생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을 '사랑'과 '진로'에 대한 고민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필자는 어려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운명을 극복할 수 있는 의지를 다짐하면서 '희망'이라는 말로 글을 매듭지었습니다. '정체성 찾기'를 해답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운명보다도 더 벗어나기 힘든 암흑 조직을 떠나겠다는 용기, 그리고 탈출, 그 순간 차란의 눈에는 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5살 때부터 감내하고 살았던 이 어둠으로부터 아주 작고 약한 빛의 세계로, 어둠으로 살던 나와 그림자로 살던 그가 적어도 사람으로 살 수 있게 되는 그런 삶."

노동일(경북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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