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서 시인이 4년 만에 두 번째 시집 '여우'를 펴냈다. 류인서는 '도굴꾼' 같다. 도굴꾼들이 예리한 눈으로 오래된 '무덤'을 바라본다면 시인은 집요한 눈으로 일상을, 영화를, 동화를, 세월을, 몸을 바라본다. 도굴꾼들이 무덤 속 보물을 응시한다면, 류인서는 사물의 표층 아래 숨겨진 속성을 응시한다. 차이가 있다면 도굴꾼은 손에 쇠 비린내나는 삽을 들었고, 류인서는 날카로운 언어를 쥐었다.
류인서는 일상, 혹은 표면 아래의 감각을 끄집어내고 있다. 그녀가 끄집어내는 감각은 표층 바로 아래일 수도 있고, 깊은 본질일 수도 있다. 본질도 표층 아래도 아닌 그저 표면에 살짝 묻은 흔적일 수도 있다.
'어둠은 오늘도 우리의 우울한 안부로구나/ 얼어붙은 창(窓)을 향해 당기는 부드러운 방아쇠/ 납방울처럼 다시 우리 귓속으로 떨어져 굳어 가는 촛농의 말/ 잠든 거리로 피 흘리는 어린 불빛을 물고 사라지는 외로운 저 작은 짐승' -촛불-
세상의 '빨주노초파남보'에 안부를 물었더니, 검정이 답한다. 세상살이가 어떠냐고 물었더니 어둡다고 답한 것이다. 여기에서 촛불은 어둠을 밝히는 빛이 아니다. 얼어붙은 창을 향해 당기는 방아쇠다. 창을 뚫고 세상으로 나아간 빛이 도착하는 곳은 어디인가? 어린 불빛이 달려나간 세상은 오가는 사람이 없는 황량한 밤거리다. 이 외롭고 약한 불빛은 황량한 어둠에 묻히기 마련이다. 거대한 어둠 속에 촛불의 여린 빛은 존재조차 의심받는다. 류인서는 이번 시집에서 존재하는 것들을 모두 사라질 무엇으로 보는 모양이다. 하긴 존재는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후루룩 급하게 말아 삼킨 혓바닥 뜨건 우동국수 같은 것이었다는/ 채 익기도 전에 새까맣게 타버린 몇 도막 살점이었다는/ 누군가의 입을 통해 유령처럼 튀어나온 잊어버린 게릴라였다는/ 시대와 치기를 섞어 버무려 단숨에 써 내리는 지루한 연대사였다는/ 술집과 노래방과 모텔 즐비한 이 도시 뒷골목 공터였다는/ 청춘, 아니 청춘의 그림자들만 뜨내기로 앉아 있었다는/ 심야할인 서비스도 지정좌석도 없는 황야의 천막극장/ 덜컹덜컹 돌수레를 끌고 세상의 끝을 돌아서 오던 그 밤이었다는' -포장마차 청춘극장-
이 시의 모든 시제는 과거다. 게다가 그 과거는 '내가 거기 있었다, 혹은 내가 그것을 보았다, 고 확실히 증언하는 게 아니다. 있었다고 하더라, 보았다고 하더라' 는 식의 간접 증언일 뿐이다. 말하자면 시인은 '그 따위 것들이 있었는지도 없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지금 여기에 청춘도 포장마차도 뜨거운 우동도 없다는 것이다. 시인이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는지, 허무하게 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이번 시집에 묶인 시들의 또 다른 특징은 언어유희다.
'봉투를 열자 전갈이 기어 나왔다/ 나는 전갈에 물렸다/ 소식에 물렸다/ 전갈이라는 소식에 물렸다/ (중략) 아무튼, 당신이 내게 등이 푸른 전갈을 보냈으니/ 그 봉투를 그득 채울 답을 가져오라 했음을 알겠다/ 긴 여름을 다 허비해서라도/ 사루비아 씨앗을 담아오라 했음을 알겠다' -전갈-
이 시에서 전갈(scorpion)은 어느새 전갈(message)로 변태한다. 언어유희를 통해 시인은 사랑의 기다림과 고통에 대해 노래하는 셈이다. 애틋한 사랑을 기다렸더니 기어코 소식이 왔는데 봉투를 열고 보니 치명적인 독을 가진 전갈이 그 안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등 푸른 전갈을 보내왔는데 내가 채워서 보낼 답은 무엇일까. 123쪽, 7천500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