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9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공개 변론이 열렸다.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는 한국 정부의 부작위가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피해자 측과 위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정부 측이 각각 추천한 참고인들을 상대로 9명의 헌법재판관들이 3시간 가까이 질문을 하고 의견을 들으며 시종 진지하게 변론을 진행했다.
일본군'위안부'. 일본군에 의해 성 노예라는, 유례를 발견할 수 없는 가혹한 고통을 당한 피해자들이다. 정조를 지켜주지는 못했으면서 유달리 정조를 강조한 한국 사회에서 40년이 넘게 '아프다'라는 말을 꺼내지도 못한, 참으로 아픈 피해자들이다. 1991년에 김학순 할머니가 공개석상에 나와 일본을 규탄한 때부터 쌓이고 쌓였던 분노가 마침내 화산이 폭발하듯 터져나왔다. 1992년 1월 8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처음 개최된 수요 시위는 17년이 넘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이어지고 있다.
'업자가 한 일'이라며 발뺌을 하던 일본 정부는, 방위청 도서관에서 일본군의 관여를 입증하는 증거 자료가 발견되자, 1993년의 관방장관 담화를 통해 '진심으로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전한다'라며 고개 숙였다. 하지만 그 후에도 1965년에 청구권협정을 체결했기 때문에 법적 책임은 질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면서도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으니 법원에 청구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노구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다니며 일본과 미국의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몇 년씩이나 끈 지루한 소송의 결과는 모두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일본의 법원은 '귄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의무는 없다'라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미국의 법원은 '법원이 개입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외교적인 문제'라는 이유로 역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한편 청구권협정 체결 과정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한국 정부는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지난한 노력이 이어지고 국내외의 여론이 들끓게 되면서, 비로소 '생활안정지원법'을 제정하여 '인도적인 지원'을 했고 국제기구에서 문제에 관해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청구권협정에 의해 국가 간의 관계에서는 끝난 일이라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적극적인 문제 해결 노력은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던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이 제기한 정보공개청구소송에서 패소한 것을 계기로 2005년 8월 26일에 한일회담 관련 문서를 전면 공개하면서, 매우 주목할만한 획기적인 결정을 내놓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본의 국가 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으므로, 일본 정부에 대해 법적 책임 인정 등 지속적인 책임 추궁을 하겠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피해자들의 거듭되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확실하게 인정하지 않았던 한국 정부가 한'일 회담 문서 공개를 계기로 청구권협정에 대해 전면 재검토한 후 비로소 명확한 결정을 내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명확한 결정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 한국 정부는 '지속적인 책임 추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심지어 2008년 이후에는 일본 정부와의 외교 석상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해 언급조차 한 일이 없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헌법재판소를 찾아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지속적으로 추궁하겠다고 선언하고서도 그렇게 하지 않고 있는 한국 정부의 부작위를 위헌으로 선언해달라고 요청하게 된 것이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그 가혹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던 것은 그들을 보호해줄 국가와 헌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정부와 법원도 미국의 법원도 그들의 호소에 응답하지 않았다. '모국'의 정부조차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주목된다. 헌법재판소가 한국 정부의 부작위를 위헌으로 선언함으로써, 이제 생의 마지막에 서 있는 피해자들이 자신들도 헌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국가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확인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창록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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