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시애틀

시애틀은 미국 서북부에 있는 도시다. 미국 다른 도시들처럼 시애틀 역시 사람 이름에서 따왔다. 이 지역에 살았던 스쿼미시란 인디언 부족 추장 이름이 바로 시애틀이다. 백인들과 함께하는 지혜를 터득했던 그는 인디언의 사고방식과 철학을 미국인들에게 각인시킨 사람으로 유명하다. 시애틀의 파이어니어 광장엔 그의 흉상도 있다.

150년의 짧은 역사를 지닌 시애틀은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힌다. 4천m가 넘는 산에다 2천여 개에 이르는 호수 등 빼어난 자연 환경에 매연을 내뿜는 공장을 찾아보기 힘들어 쾌적하기 그지없다. 세계적 커피 체인인 스타벅스의 본산지, 빌 게이츠가 세운 마이크로소프트사, 세계적 항공사인 보잉사로도 유명하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전에서 얄밉게 활약한 일본 야구선수 이치로가 소속된 메이저리그 구단도 시애틀에 있는 매리너스다.

뭐니 뭐니 해도 시애틀 하면 떠오르는 것이 맥 라이언,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이다. 인연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언젠가는 만나게 된다는, 동양철학적 분위기가 감도는 로맨스 영화다. 12주에 걸쳐 찍은 이 영화는 9주 동안 시애틀에서 촬영돼 이 도시의 빼어난 풍광을 담아냈다.

이렇게 매력 많은 도시, 시애틀이 뜬금없게 '노무현 게이트'에 얽혀들고 있다. 2007년 6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와 함께 이 도시를 방문했을 때 아들에게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받은 달러를 전달했느냐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아들 건호 씨는 이 무렵 샌프란시스코 인근 스탠퍼드대에 유학 중이었다. 권 여사가 박 회장으로부터 100만 달러를 받은 다음날 출국, 시애틀을 방문한 터여서 더 의혹을 사는 마당이다.

조만간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자신들이 사는 도시가 검은 돈을 전달한 장소란 의혹을 사는 데 대해 시애틀 시민들은 매우 불쾌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은 달콤한 사랑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반면 봉하마을의 노 전 대통령과 가족, 측근들은 검찰 수사로 잠을 이루지 못하리란 추측도 하게 된다. 비리로 얼룩진 이 땅의 답답한 현실을 잠시 떠나보자는 마음에서 '에메랄드 도시'란 별명이 붙은 시애틀 이야기를 꺼내봤다.

이대현 논설위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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