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신록 예찬

한 줌 햇살, 한 자락 바람도 다 경이로운 계절이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울긋불긋 터트리던 꽃망울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신록들이 여기저기서 손짓한다. 그 싱그러움은 아무리 우울했던 마음이라도 금세 미소 짓게 하는 마력이 있다.

작고하신 수필가 이양하 선생의 유명한 수필 '신록예찬'에는 이맘때쯤의 신록이 가지는 경이로움에 대한 찬사가 가득 담겨 있다. "신록에는, 우리의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는 듯하다. 신록을 대하고 있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모든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 낸다. 그리고 나의 마음의 모든 티끌―나의 모든 욕망(欲望)과 굴욕(屈辱)과 고통(苦痛)과 곤란(困難)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다음 순간, 볕과 바람과 하늘과 풀이 그의 기쁨과 노래를 가지고 나의 빈 머리에, 가슴에, 마음에 고이고이 들어앉는다"라고 했다.

참말로 신록을 보면 선생의 표현이 가슴에 딱 와 닿는다. 신록은 그저 보고만 있어도 빙그레 미소가 생긴다. 그저 몸을 흔들어대는 바람이거나 눈부신 햇살에도 씽긋 윙크를 하는 푸른 이파리들에게서는 즐거운 노래소리가 들린다. 그 모습을 보고 어느 누가 고통을 생각하고 나쁜 생각을 할까.

마음을 짓누르던 삶의 무게와 그로 인한 욕망들도 신록을 보면 다 녹아내린다. 말 그대로 무념무상(無念無想)의 해탈에 빠져드는 것이다.

삶이 힘겹다면,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거짓이 마음을 짓누른다면 잠시 눈을 들어 성찬처럼 펼쳐진 주위의 신록을 볼 일이다.

높은 담장을 타오르는 덩굴잎들의 "까르르르 와우, 재미있다. 저 꼭대기에 닿고 싶어, 푸른 하늘이 아름다울 거야" 재잘대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보도블록의 틈새를 비집고 있는 이름 모를 풀잎에게서는 "야, 세상이 신기해. 햇살을 쬘 수 있어 너무 행복해"하는 미소가 보일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 얼굴에 스치는 것, 그 모든 자연이 하나하나 깨달음이고 그 소리 하나하나가 다 무진법문(無盡法門)이다. 오늘은 와불의 모습이 신록으로 덮여가고 있는 금오산 자락에라도 올라가야겠다. 온통 초록 세상인 신록의 중심에서 몸속 깊숙이까지 초록물을 들여야겠다.

"모든 오욕(汚辱)과 모든 우울(憂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고, 나의 마음의 모든 상극(相剋)과 갈등(葛藤)을 극복하고 고양(高揚)하여, 조화 있고 질서 있는 세계에까지 높인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게"(이양하의 신록예찬 중에서) 말이다.

권미강(구미시청 홍보담당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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