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즐거운 책읽기]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를 찾아서

우리 신화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걸까? 서울대 국문학과 조현설 교수의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아주 오래된 우리 신화 속 비밀의 문을 여는 30개의 열쇠'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책으로 우리 신화에 대한 단순한 소개를 넘어 깊이 있는 해설서로 모자람이 없는 책이다.

우리 신화에서 가장 유명한 여신은 누굴까? 바리공주! 과거와는 달리 무속신화가 옛 이야기로 새 단장을 하고 아이들을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사회의 노소 여성들이 굿판에서 만나던 여신이 이제는 동화의 얼굴로 우리 아이들과 만나고 있다. 물론 바리데기는 굿판에도 여전히 살아 있지만. 저자는 '바리데기'를 불라국이라는 가상의 국가를 배경으로 한 국가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것도 줄줄이 딸만 낳는 병인데 일곱 번째 딸 바리공주는 그 질병의 극점이다. 불라국왕 오귀는 국가권력의 지속을 위해 아들-후계자를 필요로 했고, 그것이 어려워질 것 같자 불치병을 앓게 된다.

그러나 버려진 딸 바리데기는 국가권력 밖 태양서촌에서 자라게 되고, 서천서역국이라는 또 다른 바깥에서 치유의 약을 구해 오게 된다. 서천서역국으로 닿기 위한 바리데기의 고행은 여성들의 삶을 여실히 재현한다. 바리데기가 가져온 약물로 오귀대왕의 불치병은 치유되고, 바리데기는 자청해서 무조신이 되겠다고 한다. 굿판에서 바리데기는 영원히 살아있는 것이다. 흐린 영혼을 씻어주는 바리데기의 한풀이 미학을 두고 어떤 이는 '이것이 신화다'라고 했다.

또 다른 신화 하나.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나무꾼이 선녀와 헤어져 눈물 속에 살거나 하늘나라에서 잠깐 재회를 하는 장면에 아쉬워한다. 왜 행복한 결말을 맺지 못하는 것일까 하고. 그 이유는 바로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가 신화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이다. 민담이나 전설의 상당부분은 신화에서 유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바이칼 호수 부근에 사는 몽골 부랴트족은 백조를 신성하게 여기는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어떤 사냥꾼이 새를 잡으러 갔다가 호수에서 깃옷을 벗고 여자가 되어 헤엄을 치고 있는 백조 세 마리를 본다. 사냥꾼이 그 중 한 마리의 깃옷을 감추고, 그 여자는 사냥꾼의 아내가 되어 여섯 아이를 낳는다. 사냥꾼이 취해 잘 때 아내는 다섯 아이를 데리고 하늘로 날아가고, 남은 한 아이가 부랴트족의 시조가 된다. 이들이 백조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신화는 설명해준다. 이런 유형의 백조처녀 이야기는 유럽에서 몽골, 시베리아, 중국과 일본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 있다.

이 신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백조처녀 신화를 지닌 집단이 한반도로 들어왔거나 이야기 자체가 중계 과정을 거쳐 들어왔을 가능성이다.

신화를 통해 우리는 아주 오랜 옛날 우리가 살아온 방식, 전통과 문화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 단군의 어머니가 웅녀인지, 백호인지 물어볼 수 있고 창조신으로서 마고할미인지 마귀할멈인지 물을 수도 있다. 진정한 신화라 평가하는 바리데기 이야기와 황유양씨가 어떻게 성주신이 되었는지 알 수도 있다.

서양문학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로마신화와 성경을 꼭 알아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신화도 다양하게 현대적으로 변주되어 문학과 예술의 소재가 될 수 있다. 몇 해 전부터 여러 갈래로 시도되는 고구려의 시조 주몽관련 드라마나 작가 황석영의 소설 '바리데기', 젊은 만화가에 의한 '도깨비 신부'라는 만화까지 신화는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제공하는 샘이 될 수 있다.

신화를 현대적으로 변용하는 예술작품이 풍부할수록 우리 문화의 콘텐츠도 풍부해지리라. 이뿐만 아니라 우리 신화를 알고 이해함으로써 어떤 토양에서 한국인의 내면세계가 가꾸어져왔는지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신화도 그리스로마신화 못지않게 풍부하고 흥미롭다는 사실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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