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멕시코에서 인플루엔자가 발생하였다. 세계 각지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환자가 발생했다. 이름도 무엇으로 할지 왔다 갔다 하다가 신종 인플루엔자A로 부르게 되었다. 황금연휴를 맞아 크게 올 것으로 기대했던 일본인 관광객들은 이 때문에 많이 줄었다. 이런저런 소동을 겪으면서 그래도 세계보건기구와 각국 정부가 신속하게 대응한 결과 사태가 진정되고 있다. 이 소동을 보면서 의문이 들었다. 사스, 조류인플루엔자에 이어 이번 사태까지 바이러스로 인한 소동이 왜 계속될까? 현대 과학은 바이러스에 대해서 근원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근원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노라니 과학과 사회 경제 문제 사이에도 어떤 근원적 유사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망에 대한 조심스러운 낙관론이 제기되고 있다. 작년 여름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이래 최근 미국의 GM과 크라이슬러 처리 문제로 미국 정부가 고심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회복 조짐이 국지적으로라도 나타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희망적이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를 생각하면 앞으로 갈 길은 아주 멀다. 글로벌 불균형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고 세계경제를 지속가능한 성장 궤도에 올려놓는 작업은 아직 시작도 못하였다. 이번 사태를 교훈으로 금융위기를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앞으로 재발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을까? 아마도,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나듯이 앞으로도 경제위기는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 것이다.
케인즈는 1926년 쓴 글에서 "인류가 당면한 정치적 문제는 경제적 효율성, 사회적 정의 및 개인의 자유 등 세 가지를 결합하는 것이다"라고 설파하였다. 그런데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인류는 이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은 동일하지만, 형태를 달리하여 다시 나타난다. 그런데 앞 세대의 업적을 업고 발전한다는 과학의 세계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하여 나타나는 것일까?
지난주에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라는 주제로 여러 분야의 학자들과 자유롭게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공식적인 회의는 네 시간이었고 연이은 두 시간 정도의 저녁식사 중에도 토론은 계속되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학자들은 과학자 9명과 정치학자 2명, 신문방송학자 1명, 그리고 경제학자 1명 등 13명이었다. 과학기술, 환경, 경제, 정치, 사회 등 5개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주요 변화 양상을 약 250여개로 정리하고 이를 다시 변화를 추동하는 요인과 그것의 결과로 구분하여 궁극적으로 미래로 이어지는 변화의 단초를 찾아내는 작업의 첫 번째 모임이었다.
이 모임에서 유일한 경제학자인 나는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경제학계의 일반적인 의견을 먼저 언급하였다. 그런데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의견교환 과정에서 우리의 논의는 세계화 자체보다는 세계화의 반작용에 더 많이 할애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경제적 세계화는 효율성의 극대화를 지상목표로 하는데, 자원 부족 문제를 악화시키는 반작용을 초래한다. 환경과 식량, 지구온난화 등 산업화와 세계화가 결합되어 더욱 어려운 지구적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노동환경, 빈부격차 등 자유시장경제의 동반비용이 심화되면서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부족할 경우 사회적 지속가능성에 대한 위협이 더욱 커질 것이다. 요점은 세계화와 함께 위험은 전반적으로 더욱 커졌다는 것이다. 경제 영역에서 세계화라는 새로운 질서 추구에 대한 반작용으로 사회 영역에서 무질서로서의 위험이 증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리학의 작용·반작용의 법칙이 사회경제 영역에도 작용하는 것일까?
미래전망 방법론의 하나는 과학기술, 환경, 사회, 경제, 정치 등 분야를 따로 떼어놓지 않고 서로 연결된 시스템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세계화 이슈가 경제 영역에 한정되지 않고, 사회, 문화, 환경, 정치 영역 등에 포괄적으로 걸쳐 있듯이, 현재도 그렇지만 미래에는 중층적인 과제들이 더 많이 발생할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에도 세계화는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세상을 한 눈으로만 보는 것과 같다. 세계화의 반작용으로 진행되고 있는 위험사회 문제를 간과하게 된다. 두 눈으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
서중해·KDI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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