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던 여행사 사무실 한쪽 벽에는 커다란 세계 지도가 있었다. 나는 지도 속의 나라를 보았고 밤이면 지도 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꿈은 오래 가지 않았다. 지도는 종잇조각에 불과했으며 나는 살기 위해 여행 상품을 팔아야 했다. 여행 상품 일정표를 달달 외우고 있는 한 나는 얼마든지 손님들에게 여행을 팔 수 있었다. 외워서 여행 상품을 팔 수 있음을 깨닫던 날, 내 꿈속의 지도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다니던 여행사를 그만두고 적금을 깨, 지도 속의 나라로 떠났다. 10년 전이었다. 그렇게 3년을 떠돌다가 몽골에 도착했다.
7년 동안 나는 몽골의 초원을 안내하는 가이드로 살았다. 지도 속의 꿈을 파는 게 아니라 여행자들과 부대끼며 초원에 들어가 살았다. 그렇게 여름 한철을 보냈고, 봄과 가을에는 배낭을 메고 몽골의 드넓은 초원을 여행했다. 때로는 자동차를 타고, 때로는 걸어서, 때로는 기차나 자전거를 탔다.
사막 가운데서 길을 잃었을 때 가장 절실했던 것은 해 지기 전에 하룻밤 묵을 '게르'를 찾는 일이었다. 게르를 찾아내면 그날 밤 내 생명은 보장됐다. 몽골 사막의 유목민들은 불쑥 찾아든 이방인에게 따뜻한 수태차(우유차)와 잠자리를 내주었다.
사막에서 만난 유목민들은 지도 속에서 내가 상상했던 삶을 살지는 않았다. 지도 속의 그들은 낭만적이었다. 그러나 초원에서 만난 그들은 생존을 위해 야생의 삶에 충실해야 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흘러 다녀야 했고, 멈추는 순간 죽음과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초원의 1차적 생산은 풀에 의존하고, 풀을 찾아 그들은 이동해야 한다)
나는 유목민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들은 아롤(말린 유제품)을 만들고, 마유주(우유를 발효시킨 음료)를 저었고, 별빛이 쏟아지는 밤 하늘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비가 오기 전에 비 냄새를 맡았고 바람이 불기 전에 그 기척을 알았다.
몽골은 물이 귀한 땅이다. 칭기즈칸의 법전 예케 자사크는 '물과 재에 오줌을 눈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조항을 두고 있다. 그들이 하늘의 신 '탱그리'와 물의 신 '에투겐'을 숭배하는 것도, 물줄기를 따라 이동하며 살아야 하는 것도, 우유로 만든 수태차와 마유주를 마시는 것도 부족한 물 때문이다. 물이 귀한 땅에 사는 그들은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양을 잡을 줄 안다.(피 냄새를 맡은 야생동물의 습격을 피하고 대지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나는 초원에서 그들의 삶을 배웠고 몽골의 바람 속에서 그들의 전설을 들었다. 머링후드(마두금)의 전설은 '말은 죽어서 운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머링후드는 몽골의 유목민들이 죽은 말의 꼬리털을 모아 만든 악기다. 머링후드는 말의 울음소리와 흡사한 구슬픈 소리를 낸다. 낙타들은 이 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전설에 따르면 난산의 고통에 지친 어미 낙타는 새끼에게 젖 물리기를 거부했다. 새끼가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자 사람들이 머링후드를 연주했다. 어미 낙타는 그 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모성을 되찾았고 새끼는 젖을 물 수 있었다.
이 책은 지은이가 7년 동안 몽골에 머물면서 기록한 유목의 삶이다. 울란바토르에서 푸르공(푸른 공허-러시아산 승합차)을 타고 '신의 호수' 흡스골로 향하는 길, 자전거로 고비 사막(600㎞)과 항가이 산맥(800㎞)을 자전거로 여행한 내용이 골격을 이룬다. 몽골인들의 생활과 풍습, 자연을 풍요롭게 전하고 있다. 255쪽, 1만4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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