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세정 기자의 음식탐방]맛 카페 '맛있는 집, 멋있는 집-대구'경북'

식당 성공, 이들의 '후기'에 달렸다

사회 전반에 전문가 영역이 허물어지고 강력한 정보력을 갖춘 아마추어들이 인터넷을 통해 전면에 드러나고 있다. 맛의 세계도 마찬가지. 온라인상에서 주고받는 글들이 입소문의 진원지가 돼 식당을 망하게도, 흥하게도 한다. '맛있는 집, 멋있는 집-대구'경북'(http://cafe.daum.net/tklovefood, 이하 맛집멋집)은 그 중심에 있는 맛 카페 중 하나다.

애초 맛집멋집 전국모임 대구경북방에서 2001년 8월 독립해 나왔다. 회원수 2만3천여명에 하루 100~150여개의 새 글이 올라오는 카페라면, 지역에서 단일 주제로 꽤 큰 규모다. 따로 독립하자마자 며칠 만에 회원수가 1만명이 넘어섰다.

맛집멋집 카페지기 유지영(36'닉네임 치즈가조아)씨와 운영진 이성희(42'逆天)'허병호(33'마지막연인)'엄은정(32'엽기토끼)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를 만나도 어디 갈지, 뭘 먹을지 정하는 것이 가장 어렵잖아요. 그런데 좋은 맛집을 추천해주면 최고의 정보가 되죠. 필요한 정보니 사람들이 많이 찾고요."

그래서인지 카페는 급성장했다. 하루에 100개가 넘는 글이 올라와 입소문이 빨라지면서 이 카페 때문에 새로 생긴 식당이 급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극단적으로는 문을 닫는 사례까지 생겨난다. "카페 활동 초기에 식당 업주와 멱살잡이까지 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이제는 말 한마디의 무게가 크기 때문에 더 신중해집니다."(이성희)

식당에 대한 '좋은 후기'가 '돈'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상업적인 유혹도 끊이질 않는다.

"식당 이벤트, 시식단, 경품 행사 등은 겉으로 화려해 보이지만 일단 참가하면 솔직한 후기를 작성하는 게 어려워지죠. 금전적 문제에서 아주 작으나마 허물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요. 우리가 절대 스폰서, 공짜 밥을 사양하는 이유입니다. '회원 한 명당 얼마를 줄테니 카페를 넘기라'는 제안까지 받은 적도 있어요."(유지영)

워낙 파워 있는 카페가 되다 보니 '운영자'를 사칭해 서비스를 받는 사람도 많이 늘어났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는 '내가 카페 운영자'라며 ID를 도용, 돈을 내지 않거나 부당한 서비스를 받는다는 것. 하지만 운영자들은 "절대 그런 일은 없으니, 그런 부당한 서비스를 원하면 우리 운영자가 아니다"고 단언했다.

"8년간 카페를 운영해오면서 단 한번도 스폰서를 받은 적이 없어요. 그런 걸 받기 시작하면 식당에 힘을 행사하는 압력단체로 전락하는 거니까요." 회원들이 끊임없이 늘어나는 이유다.

현재 운영진은 6명. 이처럼 큰 카페를 이렇게 적은 인원이 관리하는 곳은 드물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 사람이 바쁘면 조금 덜 바쁜 사람이 카페 일을 해준다. 이젠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이기에 가능하다. 돈 생기는 일도 아닌데 매일 두세번씩 카페 글을 읽고 적정선을 유지하도록 관리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열정이 없으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요즘엔 맛 카페에도 블로거들의 활약이 절대적이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며 DSLR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후 음식평을 자세하게 올린다. 전문가 뺨치게 식당 정보를 담아내는 블로거들도 대구에 20명 이상 활동하고 있다. 카페의 존재 때문에 식당 주인들도 맛과 서비스에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가끔 식당 관계자가 홍보성 글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카페 회원들에게 딱 걸리기 일쑤. "회원들 눈썰미가 장난이 아니에요. CSI가 따로 없다니까요." 이 카페는 스스로 자정능력을 통해 상업적인 글은 자연스럽게 퇴출된다. 이것은 카페 운영진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점이다.

운영진들이 오랫동안 지켜본 결과 카페 글에도 트렌드가 있다. 2000년 초에는 누구나 잘 아는 식당, 한식 위주의 글이 많았던 반면 요즘은 작고 허름하지만 맛있는 '숨은 맛집'이 인기다. 또 수제버거, 와플, 중화요리집의 창업이 많아지고 있다.

카페 운영진들은 '대구 음식'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대구도 찾아보면 맛있는 집이 많아요. 반의 반도 못 먹어보고는 맛없다는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서울'부산에 비해 선택의 폭은 좁아도 먹을거리는 충분해요."(허병호)

"상다리 부러지게 풍성하게 차리는 허례허식을 버려야 해요. 그래야 반찬 재활용을 안 하고 깔끔하게 먹고 쓰레기도 줄일 수 있습니다."(엄은정)

사람이 친하기 위해선 밥을 같이 먹어보라고 했던가. 같이 먹기 위해 만나다 보니, 가족보다 더 친하다. 카페에서 활동하다가 진짜 '가족'이 된 경우도 있다.

사람이 좋아서 같은 동네로 이사하기도 한다. 20대에 만나 결혼하고 아기도 낳는 등 세월을 함께 보낸 사람들이라 녹록지 않은 세월의 연륜이 느껴진다.

"인터넷 카페의 원래 목적대로 상업성을 배제하고 순수한 후기를 공유할 수 있는 자리로 초심을 지켰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유명한 식당들도 초심을 잃고 문을 닫는 경우를 꽤 봐왔거든요."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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