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화속 예술 산책] 맘마미아

'맘마미아'란 뮤지컬은 알지만, '아바'라는 영화가 있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그것도 '길버트 그레이프' '개같은 내 인생'의 감독 라세 할스트롬의 작품이란 사실. 그가 31세이던 1977년 직접 각본, 감독, 편집까지 한 영화다.

이 영화를 본 것은 1979년 겨울이었다. 그때 한창 아바의 노래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을 시기다.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 음악의 대표 주자로 아바의 2대 2 혼성 화음이 전해주는 달콤한 멜로디가 마치 아이스크림 케이크처럼 사람들을 녹이던 때였다.

그때는 비디오라는 하이테크 첨단기계가 나오기 전이었다. 영상이란 극장 가서 보는 영화와 흑백TV가 전부였다. 좋아하는 가수의 뮤직 비디오나 공연을 보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아바의 멤버 얼굴을 알게 된 것도 '월간 팝송'과 같은 잡지를 통해서였다. 부츠에 흰 타이즈를 입은 아그네사의 관능미에 혹할 시기였다. 그때 이 영화가 개봉됐다.

본격 영화라기보다 픽션과 다큐멘터리가 가미된 영상물이었다. 아바를 인터뷰해야 하는 신문기자가 공연장을 따라다니다가, 우연하게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마침내 인터뷰를 성사시킨다는 것이 내용이었다. 영화의 대부분을 공연 실황을 다큐멘터리처럼 그린 것이 고작이었다. 영화적인 완성도는 떨어졌지만, 아바의 공연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감동적이었다. 그것이 라세 할스트롬의 초기작이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라기도 했고….

'맘마미아'는 아바의 주옥 같은 노래 22곡으로 이뤄진 뮤지컬이다. 22곡의 노래에 스토리를 얹어 만들었다. '얹어'라는 말은 너무나 쉽게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다.

결혼식을 앞둔 꿈 많은 딸(I have a dream)이 사랑하는 엄마(Honey, Honey) 몰래(Does your mother know) 아버지를 찾기 위해(The winner takes it all) 세 명의 엄마 남자 친구를 초대해 춤을 추고(Dancing Queen), 자신을 찾는(Knowing me, knowing you) 스토리가 노래 가사에 따라 그려진다.

거기에 제목인 '맘마미아'는 이탈리아어로 '세상에 이런 일이' '어머나 어쩌면 좋아'라는 감탄사이다. 세 남자가 결혼식에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에구머니나!'라는 해프닝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제목이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아바만큼 꾸준히 사랑받는 뮤지션도 드물 것이다. 비틀스를 잇는 역사적인 팝그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바는 1973년 결성된 스웨덴 출신 4인조 혼성그룹이다. 애니와 배니, 아그네사와 비요른의 이니셜을 따 ABBA로 지었다. 오늘날 스웨덴이 팝 시장에서 강국이 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고, 그룹이 해체된 지금도 스웨덴 팝이라고 하면 아바가 그 중심에 서 있다.

아바의 노래는 스웨덴을 넘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올 타임 리퀘스트곡'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1980년 8집을 내고 해체되면서 곧 사그라질 것 같던 인기는 영화나 뮤지컬로 재탄생하면서 다시 불을 댕기고 있다.

뮤지컬 '맘마미아'는 1999년 런던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뮤지컬 역사상 가장 빠르게 전 세계로 퍼지는 기록을 세웠다. 국내에서도 2004년 초연 이후 2008년 5월까지 77만명 관객에 500회 공연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달성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영화 '맘마미아'는 뮤지컬의 대중화를 위한 전략 작품이다. 감독 필리다 로이드는 뮤지컬을 탄생시킨 여류 연극 연출가다. 10년 전 런던에 첫선을 보인 뮤지컬이 그녀의 연출작이다. 영화는 뮤지컬의 이복동생인 셈이다.

그녀는 영화를 찍으면서 관객이 뮤지컬처럼 직접 공연에 참여하는 듯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바다에 뛰어드는 등 무대가 아닌 실제 현장이어서 더욱 생동감 넘치는 장면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캐스팅에 대해서는 말이 많았다. 올해 환갑인 메릴 스트립이 40대의 엄마 도나 역을 맡은 것이나, 샘 역의 피어스 브로스넌이 터지지 않은 목청과,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로 영화 내내 밖을 떠돌아다닌 것이 문제였다. 노구에 어울리지 않게 발랄깜찍한 이미지를 동원한 메릴 스트립에 대해 말들이 많았지만, 'The winner takes it all'의 열창은 인상적이었다.

아바의 노래가 인기를 끈 것은 한때 부부였던 이들의 놀라운 화음과 가창력, 경쾌한 멜로디가 사람의 마음을 잡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꾸미지 않는 노래의 가사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했고, 당신도 할 만큼 했지요. 더 이상 할 말도, 내놓을 에이스 카드도 없어요. 이긴 자가 모든 것을 갖기 마련이죠. 그렇게 단순명료한 것을 난 왜 불평하는지.' 헤어지고도 아픈 현실을 긍정하는 힘이 아바의 노래에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뮤지컬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뮤지컬은 현실을 잊게 하는 마취제, 또는 진통제다.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진 켈리가 '비를 맞으며 춤을 추네. 나는 또 행복해지네'(Singing the rain I'm happy again!)라고 미친 듯 노래하는 것이 뮤지컬의 힘이다. 힘든 시기, 대구에서 열리는 뮤지컬 축제가 바로 그런 약효를 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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