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사유머) 沙悟淨談(사오정담)-2

전라도 출신 사오정 일병이 신병 훈련을 마치고 휴전선 최전방에 배치되었다. 그곳은 밤낮없는 긴장 속에 경계근무를 서야하는 전방 GP였다. 그런데 어느 날 취침 시간이 되어 모포를 덮고 잠자리에 든 사오정이 한밤중에 배가 아파 그만 잠이 깨고 말았다. 화장실에 다녀오기 위해 동료들이 깰까봐 조심조심 내무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마침 경계 근무병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노루잠에 빠져 있는 보초병을 깨우기가 미안해 살금살금 지나쳐 화장실로 가서는 시원하게 볼일을 보고 돌아오던 사오정, 아뿔싸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깜짝 놀란 보초병이 잠에서 깨어나며 댓바람에 "정지, 암호!"를 외쳤다.

그날 밤의 암호는 '열쇠'였다. 그런데 보초병의 쇳소리에 당황한 사오정은 '열쇠'라는 암호가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순간, 사오정은 엉겁결에 '쇠떼'라고 응답을 하고 말았다. '쇠떼'는 열쇠의 전라도 사투리였다.

보초병이 그 말을 알아들을 리가 만무했고 사오정을 적병으로 오인한 보초병은 소총의 방아쇠를 당길 수밖에 없었다. 불쌍한 우리의 사오정이 죽어가면서 하는 말이 참으로 안타깝다. "쇠떼도 긴디…!"(쇠떼도 맞는데…) 사오정의 천방지축 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오정이 어느 날 약국에 갔다. 딸꾹질 그치는 약을 사기 위해서였다. 사오정이 "딸꾹질이 계속 나와서요…!"라고 말하자 약사가 대뜸 사오정의 뺨을 냅다 갈기는 것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따귀를 얼얼하게 한대 얻어맞은 사오정이 "아니 약은 안 주고 왜 때리느냐"고 항의를 하자, 약사가 하는 말이 "딸꾹질에는 그게 최고의 처방"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보세요. 딸꾹질이 그쳤잖아요"라며 웃었다. 그런데 사오정의 하소연인즉 "딸꾹질 나는 사람은 제가 아니고 우리 집사람인데요…!"

사오정은 늘 그랬다. 초등학교 시절의 시험 답안지만 봐도 그렇다. 글짓기시험 문제에서 '( )라면 ( )겠다'라는 식의 문장을 완성해보라는 문제에 사오정은 답을 (컵) (맛있)으로 썼다. 다른 학생들은 (내가 선생님이) (학생들을 더 열심히 가르치) 식으로 썼다.

'올림픽 종목에는 ( ) ( ) ( ) ( )가 있다'란 체육시험 문제에서도 사오정은 (여)(러)(가)(지)로 답안을 작성했다. 다른 학생들은 (체조) (야구) (수영) (유도) 등으로 썼다.

자연시험에서 '개미의 몸을 3등분하면 ( ) ( ) ( )'란 문제에서는 (죽)(는)(다)라고 썼다. 정답은 (머리)(가슴)(배)였다. 국사시험에서 '조선시대의 가장 천한 신분'을 묻는 질문에도 '쇤네'라고 엉뚱한 답을 했다. 그래도 TV 사극은 열심히 본 모양이다. 정답은 '백정'이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정시험에서 '찐 달걀을 먹을 때는 ( )을 치며 먹어야 한다'에서 (가슴)이라고 적었다. 다른 학생들은 (소금)이라고 썼다. 고등학교에 진학해 첫 시험을 치른 사오정의 영어시험 답안지도 일부만 공개해 본다

How do you do?(어떻게 해서 당신이 그럴 수 있나요?) I can understand(나는 거꾸로 설 수 있습니다) Yes I can(예 나는 깡통입니다) See you again(너 두고 보자) Are you cold?(아유 추워?)

따지고 보면 사오정이란 인물 캐릭터가 원래 그렇다. 1990년대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허영만의 '날아라 슈퍼보드'에서도 사오정은 귀가 덮여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역할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사오정담(沙悟淨談)은 이렇게 사회 구성원 간 소통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하는 Y담이다. 오늘 우리 사회는 어떤가. 진보와 보수로 양분되면서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에 대한 지지와 반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우리야말로 사오정이다. 사오정처럼 귀가 덮여 못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얘기가 듣기 싫어 아예 귀를 막아버리는 못된 사오정인 것이다. 小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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