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스타 마이클 잭슨이 사망했다. 우리 셈으로 따지면 58년 개띠니까 올해 52세이다. '잭슨 5'의 맨 막내로 데뷔한 것이 1966년으로 40년 이상을 연예계에 몸담았다. 잭슨 5는 마이클의 대활약으로 선배격인 카터 패밀리나 오스먼즈 등과 함께 가족 그룹의 대명사가 됐다. 72년 마이클은 독립해 첫 솔로 음반인 'Got To Be There'와 'Ben'을 잇따라 냈다. 당시 앳된 목소리의 보이 소프라노로 부르던 'Ben'이나 'Maria' 'In Our Small Way' 같은 히트곡을 기억하는 팬들도 많을 것이다.
그 뒤 한두 장의 음반에서 실패한 마이클은 20대가 되면서 세계적인 스타가 된다. 79년의 'Off the Wall'과 82년의 'Thriller'가 각각 수천만 장씩 팔리면서 상업적으로 최고의 엔터테이너가 된 것이다. 그러나 때 이른 성공은 파멸로 가는 첫 출발점이 됐다. 뛰어난 음악성을 바탕으로 큰 富(부)를 쌓았지만 그는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와 잇단 醜聞(추문)으로 서서히 추락하게 된다.
마이클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마이클에게 혹독한 음악 훈련을 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마이클로 하여금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한다. 잦은 성형 의혹은 피부가 하얗게 되는 백반증을 앓았기 때문이지 백인처럼 보이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해명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닮지 않기 위해 성형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이클은 1천만m²가 넘는 네버랜드를 만들어 자신의 왕국을 세웠지만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심상치가 않았다. 특히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어린이 성추행 의혹은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다. 실제로 대중스타인 마이클에게는 문제가 불거진 그 자체가 인간적인 死亡宣告(사망선고)와 다름없었다.
이런 일들은 한 명의 천재 뮤지션을 매장시키기 위해 교묘하게 짜인 각본 같다. 마이클이 20대 이후 발매한 공식음반은 79년 Off the Wall 이후 30년 동안 5장이다. 특히 네버랜드를 구입한 87년, 'Bad'를 발표한 뒤 20년 동안은 2장뿐이다. 寡作(과작)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좀 더 많은 음반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늘 남는다. 遺作(유작)이 100여 곡이 있다고 하니 거기에 기대를 걸어보는 수밖에 없겠다.
정지화 논설위원 ak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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