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대부들은 우정의 표시로 술과 차를 선물하곤 했다. 차를 받고 답례로 보낸 편지나 남긴 기록을 통해 그들의 교유 문화와 차에 대한 관심을 알 수 있다. 추사는 초의선사에게 편지를 보내 '스님 모습이나 편지는 보고 싶지 않으나 차의 인연만은 끊을 수 없으니 이렇게 차를 보내달라고 조르게 되오. 편지는 보낼 필요도 없고, 다만 두해 동안 쌓인 빚을 모두 챙겨 보내되 더 이상 지체하거나 어김이 없도록 하는 게 좋을 거요'라고 반 협박조로 조르는 문장이 보인다. 다소 장난기 있는 이 편지를 통해 독자들은 추사의 차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추사와 초의선사의 돈독한 우정을 짐작할 수 있다. 추사는 이에 앞서 '일찍이 차에 대한 약속을 알뜰히 한 바 있는데 하나의 가지에 하나의 잎도 보내주지 않으니 한탄스럽소'라고 편지를 쓰기도 했다.
정약용은 승려 혜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고통이 많은 이 세상 중생을 제도함에 가장 중요한 것은 보시를 베푸는 일이며, 이름난 산의 좋은 차를 몰래 보내주는 것이 가장 상서로운 일이라오. 모쪼록 목마르게 바라고 있음을 생각하고, 은혜 베풀기를 인색하지 말기를.'
이런 편지는 요즘 친한 친구들 사이에 예의를 갖추기는 하되, 장난기를 섞어 요청하는 모습과 별로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또 추사 김정희의 아우 김명희는 초의선사가 보내준 차를 받고 사례 시를 썼다.
'늙은 사내 평소에 차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하늘이 그 어리석음 미워해 학질에 걸리게 했도다/ 더워 죽는 것은 걱정 없으나 목말라 죽는 것은 근심이라/ 급히 풍로에 찻잎을 끓여 마셨노라/ 북경에서 들어온 차는 가짜가 많은데/ 향편이니 주란이니 하며 비단으로 쌌도다/ (중략) 초의가 홀연 우전차를 보내왔기에/ 대껍질로 싼 새매 발톱 같은 좋은 차 손수 개봉했네/ 울울함과 번뇌 씻어주는 공효 더할 나위 없고/ 그 효과 빠르고 산뜻하기 어찌 이리 크리오.'(하략)
이 시를 볼 때 김명희는 초의선사가 보낸 차를 마시고 학질이 나은 듯하다. 더불어 당시에도 이름만 그럴듯한 '짝퉁 제품'이 흔하게 돌아다녔음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책은 다산 정약용과 혜장 스님의 차 이야기, 추사와 초의선사의 차 이야기 등을 싣고 있다.
한국에 차가 전래된 것은 가야국 김수로왕에게 시집온 인도 공주 허황옥부터라는 설이 있을 만큼 오래전이다. 그러나 차 문화 관련 문헌 정리는 일부 애호가들의 손에서 개별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교양으로 접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은 조선 후기 차와 관련한 다양한 글을 번역해 시와 산문으로 분류하고 각각 1권과 2권으로 수록한 것이다. 1권에서는 임수간에서 시작, 정약용, 신위, 초의선사, 김정희, 홍현주, 신기선에 이르기까지 44명의 차시(茶詩)를 수록했다. 한시가 많고, 차를 마시는 한가로운 정취와 분위기를 읊은 것들이다. 2권에서는 이익의 다식(茶食)에서부터 이덕리의 기다(記茶),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 이르기까지 모두 29명의 차에 관한 글과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에서 뽑아내 차에 관한 기록을 담았다.
차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차와 관련해 주고 받은 편지, 기록을 통해 당시의 교유 양상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차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담은 글, 차의 재배와 보관, 끓이고 마시는 법, 다구의 종류와 용법에 관한 글도 다양하다. 특히 이덕리의 '기다', 정약용의 '차의 생산과 판매' '차의 전매제도' 등을 보면 조선시대 사람들이 차를 단순한 문화적 기호품이 아니라 국가적 산업으로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1권 328쪽, 2만원. 2권 408쪽, 2만2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