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감동 주는 진행자 꿈꾸죠"…대구 MC계 강철원·김대진

나 아닌 다른 사람을 감동시킨다는 것.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고. 참 어렵다. 더욱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나보다 그들이 주인공이 되게 하는 것. '나'는 있지만, '여러분'을 위해 있는 나. 어둠과 빛을 오가며 그들을 빛나게, 즐겁게 할 수 있는 역할. 과장한다면, '꼭두각시' 역할이다. 그러나 함께 행복한 꼭두각시여야 한다. 꼭두각시 같지만, 기실 사람과 분위기를 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숨은 주인공이다. 개그맨도 아니고, 코미디언도 아니다. 비슷하지만, '신명을 이끄는 사람들'이란 표현이 맞겠다. 축제, 파티, 이벤트를 끌고 가는 사람들. 그들은 'MC(Master of Ceremonies)'라고도, 레크리에이션 또는 프로그램 진행자(사회자)라고도 불린다.

대구지역 MC는 2000년 이후 양산됐다. 특히 6, 7년 전부터 MC계의 '화려한' 부분에 매료된 젊은이들이 너도 나도 지망했다. 방우정, 조정환, '김쌤' 김홍식, 김제동씨 등의 역할이 컸다.

방우정(48)씨의 뒤를 이은 김제동(35)씨가 속칭 '뜨면서'부터 가속도를 더했다. 방씨는 90년대 지역 대학가 축제에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당시 방송계에선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대단한 '끼'에도 불구하고, 사투리가 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쌤'은 사투리를 잘 활용해 개그맨과 방송인으로 떴다. 방씨의 제자(?) 김제동씨는 사투리를 극복하고 구수한 입담으로 더 '떴다.' 현명호(39)씨도 오프라인에서 맹활약 중이다. 삼성 라이온즈 및 동양 오리온스와 전속을 맺고 있는 놀레벤트, 방씨가 이끌고 있는 MC리더스 등 이벤트사가 이때부터 특히 주목받았다.

예일커뮤니케이션즈 강철원(39) 대표와 지니벤트 김대진(36) 실장도 대구 MC계를 이끌 유망주다. 강 대표는 이미 이 방면에 이름을 얻고 있고, 김 실장은 떠오르는 MC다. 두 사람 모두 독특한 이력과 사연을 안고 있다. 강 대표와 김 실장을 통해 지역 MC계의 겉과 속을 살펴봤다.

◆배고픔과 아픔에서 출발한 강철원

"용서하고, 감사하고, 칭찬하십시오. 그러면 가정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강 대표는 웃음 특강 첫머리에 '용서, 감사, 칭찬'이란 말을 끄집어낸다.

"남편이 술 마신 뒤 밤늦게 문을 박차고 들어와도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술 마시고 밤거리에서 쓰러지거나 몸을 다치거나 지갑을 잃어버리지 않은 점에 대해 감사하십시오. 힘들고 각박한 직장 생활에서 그나마 술 마시면서 이를 풀고, 가족에 대해 불평하지 않고 돈을 벌어다 주는 부분에 대해 칭찬해주십시오. 칭찬한 뒤 '몸을 생각해 술을 조금만 줄여달라'고 한마디 하십시오. 바가지를 긁는 대신 용서하고, 감사하고, 칭찬하면 가정이 행복해집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로 남편도 아내에 대해 이렇게 한다면 '정말' 더 행복한 가정이 될 터. 하지만 쉽지 않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아내들이 모두 웃는다. 그 웃음의 의미는 다양하겠지만.

강철원 대표의 아버지는 시각장애인이다. 어머니는 강 대표가 어릴 적 자궁암의 부작용으로 다리가 불편하다. 집안은 가난했다. 전문대 시절 학비를 위해 총학생회 기획부장을 맡았다. 등록금의 70%가 장학금으로 지급됐기 때문이다. 1학년 때부터 신입생환영페스티벌이나 졸업축제 등에 단골 사회자로 등장했다. 물론 5만원 안팎의 진행비를 받았지만, '박리다매'로 1년에 10여개 학과를 돌며 진행하고 받은 푼돈을 학비와 책값에 보탰다. 고교 때 교회 중창단에서 성악을 한 것이 '초보 MC'를 빛나게 하는데 꽤 도움이 됐다. 8년 전 웃음치료사로서의 훈련도 받았다.

그는 프로 MC의 길을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다. 웃음치료사 공부에 이어 복지관련 지식을 쌓기 위해 계명문화대를 졸업하고 5년 뒤 경운대 아동복지학과를 또 졸업했다.

놀레벤트에서 청소년 분야 MC를 맡아오다 99년 독립했다. 올해가 홀로서기를 통해 본격적으로 MC계에 뛰어든 지 10주년이 된다. 처음 아내와 친구 등 3명이 시작한 이벤트사는 이제 10명으로 식구가 늘었다.

성대결절을 극복하기 위해 10여년 전 수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목소리는 거칠다. 하지만 거친 목소리 그대로 매력을 발산해 찾는 기업이나 유치원, 학교가 많다. 그는 아이든 어른이든 좌중의 분위기를 휘어잡는 힘이 있다. 또 각 계층의 눈높이를 감안한 '맞춤형 진행'의 달인이기도 하다. 기타연주와 노래, 율동도 그의 '주무기' 중 하나다. 그는 이제 ▷기업연수 ▷대학 축제 ▷청소년 야영대회 ▷웃음특강 ▷유치원 운동회와 재롱잔치 등 다방면에서 단골MC가 됐다. 복지분야 지식을 바탕으로 병원 '환우의 밤', 노인복지시설 행사 등에도 종종 불려간다.

강 대표는 "MC는 기본지식과 끈기, 동일화 등의 소양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단순히 우스갯소리나 몸동작을 통해 분위기를 이끈다면 웃음을 끌어낼 수는 있겠지만, 감동을 끌어내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진정한 감동은 진행자 자신이 좌중 속에 들어가 함께 뛰고 땀 흘리고 웃고 웃으며 함께 느낄 때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고객만족을 위해 애쓴다. 문자메시지는 기본. 자신의 업무범위를 벗어난 요구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점검해준다. 현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책이나 신문사설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성공한 선배'들의 책이나 칼럼도 챙긴다. 그는 "그래도 가장 힘든 것이 '고객만족'과 직원들과의 '호흡'"이라고 했다.

그는 고객만족을 위해 직원들을 다그친다. 함께하는 식구들은 그 때문에 조금 피곤하다. "급한 성격을 좀 바꿔야 하는데…."라고 스스로를 성찰했다. '진정한 감동을 주는 진행자'의 꿈을 위해 강 대표는 지금도 고민하고 공부한다.

◆피에로를 동경한 김대진

'햇살을 뚫고 나오지 못할 만큼 두터운 구름은 없다. 앞을 못보는 장님보다 불행한 사람은 꿈이 없는 사람이다.'

김대진 실장이 늘 마음에 두고 있는 명언이다.

김 실장은 "'신은 누구에게나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준다' '자기 일을 즐기고 최선을 다한다면 누구나 성공을 꿈꿀 수 있다'는 생각을 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지니벤트의 사실상 대표이다. 하지만, 나이가 아직 '어리다'고 생각해 명함에는 실장이란 직함을 넣었다. 그는 10년 전까지 부산에서 잘 나가던 '장대 퍼포먼스' 광대였다. '키다리 피에로'로 불렸다. 하지만 2000년 대구로 왔다. 독립적인 공연자가 되고 싶었는데, 부산에서 독립하면 결국 이전 소속 회사와 같은 공간에서 경쟁관계가 될 것이란 우려 때문에 활동무대를 옮긴 것.

그는 겸손하다. 김 실장의 주변 사람들은 ▷겸손함 ▷철저한 약속 이행 ▷긍정적인 사고와 행동 등을 그의 장점으로 꼽았다. 행사 '고객'들의 무리한 요구까지 지혜롭게 받아들인다.

김씨의 선배 김성곤(43)씨는 "9년 전 음식점 오픈행사를 통해 처음 만나 지금까지 계속 만나고 있는데, 너무 착한 사람"이라며 "따뜻한 인간미를 지닌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시절 학교 축제 때 교내 나이트클럽 DJ, 학과 졸업페스티벌, 축제 진행자 등으로 '끼'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서울 놀이공원에서 '키다리 피에로'를 보고 감동받은 뒤 본격적으로 '장대 퍼포먼스'를 맹훈련했다.

그는 "'정말 이것은 획기적이다.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고, 그 이후 서울, 부산을 오가며 배웠다"고 말했다. 서울 벌룬뱅크에서 처음 배웠다. 70Cm 높이의 장대 위에서 걷는 것을 기본으로 마술, 마임, 풍선아트, 캐릭터 분장 등을 하나하나 익혔다. 부산의 한 업체에 소속돼 '장대(키다리) 퍼포먼스' '석고마임' 등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결국 '키다리 피에로'는 김 실장이 동경하는 대상에서 좌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장본인으로 바뀌었다. 어릴 적부터 성우가 되는 게 꿈이었던 그는 '키다리 피에로'에 만족할 수 없었고, 키다리 피에로에서 더 나아가 전문 MC로 거듭나고 싶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김 실장은 연고가 없던 대구에서 점차 유명세를 타고 있다. 컬러풀대구축제, 우방랜드 영타운, 삼성라이온즈 야구 개막전, 아카시아 벌꿀축제 등을 비롯해 대구·경북지역 각 축제에 단골손님이 됐다. 지역 체육대회, 청소년 캠프, 송년회, 유치원 행사 등도 진행하고 있다. KTF, 던킨 도너츠, 베스킨라빈스 등 지역 프로모션을 담당하고 있다. 축제기간에는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따뜻한 인간미'를 지닌 김 실장은 오늘도 '꿈'을 향해 뛴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사진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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