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학 시인이 시집 '낱말'을 출간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낱말' 자체에 대한 시라고 할 수 있다.
문자는 약속이다. 그 약속의 과정과 정체성을 떠나 인위적인 훼손은 의사소통을 방해한다. 문자를 매개로 하는 문학작품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널리 통용되는 낱말은 속성상 뜯고 부수고 재조립하면 위험하다. 그 의미가 달라지거나 파괴돼 버리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과는 사과다'라는 동어반복만큼 사과를 명확하고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낱말은 없다. 사과는 달다, 쓰다, 붉다, 둥글다 라는 식의 표현은 사과의 단면 포착에 불과하다. '사과는 사과다'라고 동어반복할 때 가장 분명하고 완전한 것이다.
이렇듯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 언어의 이치를 시인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 문무학 시인은 객관적인 낱말에 자신의 주관을 동원, 낱말을 해체한다. 갖가지 문장 부호를 뜯어서 설명하고 말장난 같은 말을 쏟아낸다. 틀림없이 위험한 작업이다. 그럼에도 문무학의 새로운 이해와 해석이 '말장난'을 넘어 '인간애'로 와 닿는 것은 귀결점이 따뜻한, 인간을 향한 애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응' 자는 긍정이다/ 둥글둥글 수용이다/ 거꾸로 돌려놓아도/ 변함없이/ 응/ 이 되는/ 저토록/ 완벽한 균형/ 어떻게 거부하라. -낱말 새로 읽기 -응-
'그래'라는 감탄사는 그야말로 감탄할 만하다. 두 음절의 이 낱말이 세상을 끌어안는 힘/ 아무리/ 힘센 뭐라 해도/ 어이 쉬 이기겠는가 -낱말 새로 읽기- 그래-
문무학의 깨트리기와 헤집기는 자기 파괴를 향한 '부정'이 아니다. 시집에 묶인 시 '아니다'에 이르면 확연해진다. 시인은 '아니다'를 '안'으로 변환시켜 이 세계를 온기 넘치는 세상으로 만든다.
'아니다는 그렇다 바깥 아닌 안이다/ 아니다로 읽지 말고/ 안이다로 읽으면/ 아닌 게/ 가슴에 녹아/ 안이 되어 줄 것이다' -낱말 새로 읽기 38-아니다-
위험해 보이는 시적 발상이 위험하지 않은, 따뜻함으로 귀결하는 것은 아마 '연륜' 덕분인지도 모른다. 낱말 새로 읽기-61-은 '엉거주춤'이라는 기이한 '춤(Dance)'에 관한 이야기다.
'엉거주춤은 신명나는/ 그런 춤은 아니지/ 앉지도/ 서지도/ 자빠지지도 못하여/ 간신히/ 세상 붙들고/ 허둥거린/ 내 춤이지' -낱말 새로 읽기 61-엉거주춤-
이 시는 올해 환갑을 맞은 시인이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자신이 쓰고 싶어했던 '낱말'로 쓴 시다. 중년의 남자가 엉거주춤 서서 엉거주춤 춤을 춘다. '엉거주춤'은 젊은이들의 춤만큼 세련된 맛은 없지만 격조 있고 푸근하다. 131쪽, 8천500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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