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해체하고 재조립한 낱말… 인생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책]낱말-문무학 지음/동학사 펴냄

문무학 시인이 시집 '낱말'을 출간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낱말' 자체에 대한 시라고 할 수 있다.

문자는 약속이다. 그 약속의 과정과 정체성을 떠나 인위적인 훼손은 의사소통을 방해한다. 문자를 매개로 하는 문학작품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널리 통용되는 낱말은 속성상 뜯고 부수고 재조립하면 위험하다. 그 의미가 달라지거나 파괴돼 버리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과는 사과다'라는 동어반복만큼 사과를 명확하고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낱말은 없다. 사과는 달다, 쓰다, 붉다, 둥글다 라는 식의 표현은 사과의 단면 포착에 불과하다. '사과는 사과다'라고 동어반복할 때 가장 분명하고 완전한 것이다.

이렇듯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 언어의 이치를 시인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 문무학 시인은 객관적인 낱말에 자신의 주관을 동원, 낱말을 해체한다. 갖가지 문장 부호를 뜯어서 설명하고 말장난 같은 말을 쏟아낸다. 틀림없이 위험한 작업이다. 그럼에도 문무학의 새로운 이해와 해석이 '말장난'을 넘어 '인간애'로 와 닿는 것은 귀결점이 따뜻한, 인간을 향한 애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응' 자는 긍정이다/ 둥글둥글 수용이다/ 거꾸로 돌려놓아도/ 변함없이/ 응/ 이 되는/ 저토록/ 완벽한 균형/ 어떻게 거부하라. -낱말 새로 읽기 -응-

'그래'라는 감탄사는 그야말로 감탄할 만하다. 두 음절의 이 낱말이 세상을 끌어안는 힘/ 아무리/ 힘센 뭐라 해도/ 어이 쉬 이기겠는가 -낱말 새로 읽기- 그래-

문무학의 깨트리기와 헤집기는 자기 파괴를 향한 '부정'이 아니다. 시집에 묶인 시 '아니다'에 이르면 확연해진다. 시인은 '아니다'를 '안'으로 변환시켜 이 세계를 온기 넘치는 세상으로 만든다.

'아니다는 그렇다 바깥 아닌 안이다/ 아니다로 읽지 말고/ 안이다로 읽으면/ 아닌 게/ 가슴에 녹아/ 안이 되어 줄 것이다' -낱말 새로 읽기 38-아니다-

위험해 보이는 시적 발상이 위험하지 않은, 따뜻함으로 귀결하는 것은 아마 '연륜' 덕분인지도 모른다. 낱말 새로 읽기-61-은 '엉거주춤'이라는 기이한 '춤(Dance)'에 관한 이야기다.

'엉거주춤은 신명나는/ 그런 춤은 아니지/ 앉지도/ 서지도/ 자빠지지도 못하여/ 간신히/ 세상 붙들고/ 허둥거린/ 내 춤이지' -낱말 새로 읽기 61-엉거주춤-

이 시는 올해 환갑을 맞은 시인이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자신이 쓰고 싶어했던 '낱말'로 쓴 시다. 중년의 남자가 엉거주춤 서서 엉거주춤 춤을 춘다. '엉거주춤'은 젊은이들의 춤만큼 세련된 맛은 없지만 격조 있고 푸근하다. 131쪽, 8천500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4주 연속 하락해 51.5%를 기록했고,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을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스타벅스 코리아는 마케팅 논란 재발 방지를 위해 오는 22일 전국 매장에서 영업을 조기 종료하고 교육을 실시한다. 신세계그룹은 17일 역사 ...
6·3 지방선거 당일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비상임위원 7명이 청사에 출입 기록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며 의문...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