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현대병'에 시달리는 노인이 늘고 있다. 돈 있는 노인들은 자식 뒷바라지에 허리가 휘고, 돈 없는 노인들은 자식들의 홀대에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캥거루 내 아들, 늙어도 고생
"어머님, 이번 휴가도 함께 가셔야죠." 김모(67·여)씨는 며느리의 전화를 받고 한숨을 쉬었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자식들과 함께 휴가를 보내니 얼마나 좋으냐"고 하지만 평소 손자들 학원비에 생활비를 지원하는 터에 휴가비까지 줘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매년 동남아 휴가비용만 줄잡아 500만원"이라며, "처음에는 내 자식을 위해 쓰자고 생각했지만 마흔 바라보는 나이에도 부모 뒷돈만 바라고 있는 아들 내외를 볼 때면 자식을 잘못 키운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요즘 맞선 시장에서는 '예비 시아버지의 재력'을 첫손가락으로 꼽는 젊은 여성들이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최모(26·여)씨는 최근 결혼정보업체에 등록하면서 조건으로 '시부모 재산 50억원'을 내걸었다. 최씨는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서 월급을 받아도 부모님이 물려주는 재산 없이는 중산층 대열에 들어서기 힘든 세상 아니냐"며 "예비 남편의 능력이나 성품 등도 중요하지만 결국 기댈 곳은 시부모 재산"이라고 말했다.
D결혼정보업체 이진우 대구지사장은 "능력이 있는 한 자식을 돌봐주려 하고, 자식들도 부모에게 기대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한국 사회 분위기 탓"이라며 "대구의 경우 안정적인 직장이 많지 않다 보니 시부모의 재력을 결혼 조건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했다.
◆돈 없는 부모 나 몰라라, 차라리 자식 없었으면
"자식이 여럿 있으면 뭐해. 한 푼도 도와주지 않는데." 이모(78) 할머니는 기초노령연금과 폐지를 주워 판 돈 등을 합쳐 한 달 10만원 남짓한 돈으로 생계를 꾸린다. 자식 다섯이 있지만 4명은 형편이 좋지 않아 부양 능력이 없고, 그나마 먹고살 만한 아들도 서너 달에 한 번 들러 몇 만원 쥐여주고 가는 게 고작이다. 동주민센터를 찾아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느냐"고 문의했지만 "부양 능력이 있는 자식이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답만 들었다. 이 할머니는 "차라리 자식이 없어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된 노인들이 부럽다"고 푸념했다.
최모(88) 할머니는 5년째 쪽방에서 혼자 산다. 할머니가 재산을 자식들에게 모두 나눠준 후부터다. 할머니는 "상가 건물과 땅이 조금 있을 때는 귀찮을 정도로 찾아오던 자식들이 재산을 나눠준 뒤로는 코빼기도 안 보인다"며 눈물지었다.
구청 관계자는 "자식이 부양을 거부할 경우 정부가 기초생활수급자로 우선 선정하고 생계비를 지급한 뒤 자식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도 있지만 대부분의 노인은 '자식에게 짐을 지울 수 없다'며 그냥 돌아선다"고 말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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