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하면 낙동강을 빼놓을 수 없다.
일행은 지난 겨울부터 봉화를 시작으로 영주와 안동, 청송, 영양, 예천 등지를 지나면서 낙동강의 서로 다른 얼굴을 수없이 봐 왔다.
깎아지른 협곡 사이로 거침없이 물을 내뿜고, 주변의 비경을 한껏 품고 뽐내는가 하면 때론 어머니의 품처럼 수많은 계곡의 물을 가슴에 담아 남쪽으로 남쪽으로 물을 내주고 있었다.
상주의 낙동강은 봉화, 영주, 안동, 예천 등 위쪽 지방의 낙동강과는 또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상주의 낙동강은 드넓고, 힘차고, 우아했다.
요즘 정부는 낙동강, 한강, 금강, 영산강 등 4대 강 정비 사업이니, 4대 강 주변 역사·문화·생태 조성사업을 한다고 난리다. 확 줄어든 수량을 옛날처럼 회복시키고, 찌든 강의 얼굴을 흰 모래사장과 습지, 숲이 어우러진 강, 사람이 다시 찾는 강으로 되돌리겠다는 것이다. 또 강 주변을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강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작이다. 한마디로 '강다운 강'을 만들겠다는 의지인 것 같다.
상주는 정부가 바라고, 낙동강이 입을 수 있는 옷을 다 입었다고나 할까.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은 상주에서 명실상부 '제 옷'을 입고 700리 대장정에 오르고 있다. 그래서 상주는 대한민국 최중심이자 낙동강의 중심 도시로 우뚝 서고 있는 것이다. 상주는 영남의 으뜸 고을이자 학문의 으뜸 고장, 여기에 낙동강의 으뜸 도시라는 타이틀까지 갖고 있는 것이다.
일행은 상주의 낙동강을 직접 느끼기 위해 물길탐사에 나섰다.
낙동강 제 1의 절승지 경천대를 시작으로 상주의 낙동강이 끝나는 낙동면까지의 여정이었다. 경천대는 익히 알려진대로 절경이다. 경천대 전망대부터 올랐다. 상주박물관 쪽에서 20분 남짓 산행을 하면 오를 수 있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낙동강은 '용틀임'이었다. 저 멀리 예천의 삼강에서 내려온 낙동강은 경천대 건너 편 회상마을을 단박에 삼킬 만큼 휘감은 뒤 남쪽으로 힘차게 내달리는 형국이었다. 영주의 수도리, 안동의 하회, 예천 회룡포의 용틀임이 상주 경천대 앞에서도 펼쳐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전망대의 감흥을 뒤로 하고 경천대 절벽 밑으로 발길을 옮겼다. 절벽 아래의 강물은 깊고 짙었다. 강 건너의 백사장은 축구장 2, 3개를 합쳐도 부족할 만큼 광대했다. 경천대의 낙동강은 잘생긴, 근육질의 남자와 같았다.
경천대에서 강따라 10분 정도 걸어 내려오면 지금 자전거박물관 공사가 한창인 곳이 있다. 박물관 앞에는 일명 '자전거대로'가 있고, 그 아래의 낙동강은 일행의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진정 '강다운 강'이었다.
경천대 앞의 낙동강 위용도 모자라 몸집을 더 키운 것이 아닌가. 지금껏 봐온 낙동강 중 백사장의 규모가 가장 컸다. 강 폭 역시 족히 100m는 넘었고, 물의 맑기는 깨끗하면서 깊고 짙었다. 강 건너는 울창한 숲을 품은 절벽이 강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생태의 보고인 습지도 백사장 위쪽에 자리했다. 이곳의 낙동강은 마치 '펄떡이는 심장'과도 같았다.
낙동면까지의 상주 낙동강은 한 식구였다. 모두 형제·자매처럼 닮았다. 헐벗고 찌든 곳은 찾기 어려웠다. 상주의 낙동강엔 문명의 산물인 콘크리트가 존재하지 않았다. 강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는데 굳이 인간이 손을 댈 이유가 없었다.
낙동면 낙단대교 아래의 낙동강은 상주의 낙동강 중 수량이 가장 풍부했다. 지금도 배(보트)가 뜨고, 강태공과 유람객들이 쉼없이 찾고 있었다.
정부가 낙동강을 제대로 살리겠다면 그 해답은 바로 상주의 낙동강에서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상주의 낙동강을 정확히 알려면 지리와 역사공부도 해야 한다.
낙동강은 1천300리다(525.15km). 태백과 봉화의 고산준령에서 시작해 1천300리 긴여정을 거쳐 남해로 흘러간다. 태백과 봉화에서 시작된 낙동강은 안동에서 영양에서 발원한 반변천(낙동강의 동쪽 원류)의 물을 품어 예천 삼강에 이르면 봉화에서 발원해 영주와 예천을 거쳐 내려오는 내성천(낙동강의 서쪽 원류)의 물까지 차지해 버린다.
낙동강은 다시 삼강의 남쪽으로 흘러 상주시 사벌면 퇴강리에 이르면 문경의 영강과 상주 함창 이안천의 물을 또다시 품으니 비로소 낙동강 700리의 남해장정에 오른다. 퇴강리 낙동강변에는 '낙동강 칠백리 이곳에서 시작되다'라는 표지석이 '강다운 강'을 알리고 있었다.
상주의 옛 이름은 신라 진흥왕때 제정한 상락(上洛)과 신라와 고려시대의 주된 지명인 상산 등이다. 상주 땅에 상락이란 별호가 생긴 뒤 낙동강의 이름은 "상락의 동쪽에 와서 강다운 강이 된다"고 해 낙동강의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이중환의 택리지).
상주의 큰 선비인 창석 이준은 상주의 향토지인 상산지에서 "낙수(중국 하남성의 천으로 신선이 사는 신령한 곳, 유학의 원류를 상징하는 강으로 통한다. 낙수는 고려와 조선에서 낙동강의 또 다른 이름이다)는 태백산에서 나와 수 백리를 흘러 상락의 동쪽에 이르러서야 그 세력이 점점 커지므로 물의 이름을 '낙동(洛東)'이라 하였다"고 적고 있다.
또 경상북도 지명유래총람에선 "내(川)가 모여 강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는 지역인 이 곳(상주)의 옛 지명이 상락과 낙양이었다. 상주시 낙양동은 중국의 고대국가 수도인 낙양성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동쪽을 낙동, 서쪽을 낙서, 남쪽을 낙평, 북쪽을 낙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상락과 낙양의 동편에 강이 흐르므로 낙동강의 이름은 상주로 하여금 생겨난 것으로 밝히고 있는 것이다.
신라와 고려, 조선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주요 문헌마다 낙동강의 유래를 상주로 밝히고 있는 만큼 상주가 낙동강 이름의 탄생지로 알려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상주시에는 낙양동이 있고, 동쪽에는 낙동면, 서쪽에는 낙서리가 있고, 북쪽에는 낙상리라는 지명이 있다.
상주는 낙동강 상류의 물을 모두 품고, 명실상부 낙동강 700리 대장정의 출발선에 있다. 그리고 옛날 우리의 선조들은 낙동강의 지명을 상주에서 찾고 있다. 지금의 경상북도 역시 상주에서 낙동강의 천년 미래를 열고 있다.
뭘 말하겠는가. 이제 상주 사람들은 그 자부심 이상으로 상주를 낙동강의 중심 도시이자 낙동강 천년 미래의 주역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종규기자 상주·이홍섭기자 사진 윤정현
자문단 조희열 상주향토문화연구소장 곽희상 상주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강경모 상주향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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