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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방미인·마당발은 기본"…정무 부단체장의 세계

광역단체장은 시·도민들이 직접 뽑은 수장(首長). 인사, 예산 등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혼자 슈퍼맨일 수는 없다. 광역단체 각 부서의 실무적인 일은 국 단위, 부 단위에서 처리할 일이지만, 각종 대외관계에서 단체장의 일을 대신해주거나 힘을 덜어줄 분신(分身) 같은 존재가 필요한 것. 그래서 생겨난 것이 정무 부단체장이다. 바로 정무부시장과 정무부지사다.

이 직책이 생겨난 것은 1995년. 시·도민들이 직접 단체장을 선출하는 지방자치제가 시작되면서부터다. 대구는 현 남동균 정무부시장이 6번째, 경북은 공원식 정무부지사가 9번째 정무 부단체장이다. 벌써 15년째로 많은 이들이 거쳐갔다. 이들에 대한 평가는 어떠할까. 정무 부단체장의 주요 역할은 뭘까.

대구시와 경북도의 전·현 정무 부단체장들의 역할과 공과를 살펴봤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한 정부 부단체장의 역할은 ①광역의회와의 생산적 관계 형성 ②예산과 관련된 국회활동 ③언론 등 대외관계 윤활유 역할 ④특화 분야에서 단체장 업무 분장 등으로 요약된다. 물론 단체장과의 관계에 따라 또 다른 임무가 주어지기도 했다.

◆하기 나름, '부담 백배'

정무 부단체장은 본인 하기에 따라 그 활동폭이 넓어질 수도 좁아질 수도 있다. 특히 대외관계 부분에선 본인 성격과 의지에 따라 역할범위와 성과가 큰 차이를 보일 수 있다. 단체장에게 큰 힘을 실어줄 수도 있지만, 소극적 역할로 과소평가될 수도 있다.

남동균 대구시 정무부시장은 "1980년 경북도청 수습 사무관 시절을 빼곤 30년 가까이 중앙부처에서만 있다보니 지역에서 활동폭을 넓히는데 다소 부담이 된다"며 "국회나 중앙부처에서 예산 관련 일이 오히려 더 수월하다"고 털어놨다. 남 부시장에게 대외관계 분야의 정무적 부문은 내실을 기하는 실속파인 그에게 부담이 되는 측면이 적잖다. 1년 가까이 지내면서 남 부시장의 활약상이 화려하게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주변 평가도 그의 어깨를 무겁게 한다.

남 부시장은 "가족이 다 서울이 있고 혼자 내려와 살다보니 저녁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한다"며 "특히 대구에서 추진하고 있는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 영남권 신공항 건설, 국가산업단지 건설 등 주요 사업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일(김천의료원장) 전 경북도 정무부지사(8대)는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구미시장 시절에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건전한 비판을 해 건설적인 관계를 형성했다. 김 지사로부터 정무부지사로 부름받았던 김영일 원장은 공무원을 비판만 하던 입장이었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술도 골프도 잘 못해 정무적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할까봐 몸을 혹사시켜가면서까지 핸디캡을 극복했다. 골프는 몇 달동안 짬짬이 틈을 내 손에 굳은 살이 박히도록 연습해 단기간에 함께 라운딩을 해도 괜찮을 정도가 됐다. 술 마시는 실력(?)도 정무 부지사 재임기간 크게 늘었다.

김 원장은 "처음 시작할 때 갑과 을이 바뀌다보니 모든 게 낯설었고 혹시나 실수를 할까 겁도 났다"며 "하지만 노력하니 극복할 수 있었고, 특히 전문분야인 사회복지 쪽에서는 더 자신있게 일을 추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팔방미인 '허세도 부려야'

공원식 경북도 정무부지사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운동도 즐겨하고, 정당 생활을 30년 넘게 한 저에게는 정무직이 적성에 맞는 편"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 추천 몫으로 9대 정부부지사에 취임한 공 부지사는 40여일간 일하면서 서서히 안팎의 업무에 시동을 걸고 있다.

공 부지사는 "일반적인 정무 부단체장 역할에 더해 저는 국가 중점사업이자 지역에 도움이 될 4대강 살리기 사업이란 특별 임무가 하나 더 추가돼 있다"며 "정부와 광역단체의 유기적 협조체제를 통해 낙동강이 지나는 경북도 곳곳을 멋지게 개발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포항시의회 3선 의원이자, 의장을 했던 경험은 경북도의회와의 원만한 관계 형성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자평했다.

그는 "대언론 관계에 있어서도 공보실 직원들의 부담을 덜어주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도 제7대 정무부지사였던 이철우 한나라당 국회의원(경북 김천). 이 의원은 "정무직은 아무래도 대인관계가 폭넓고 여러 분야에 팔방미인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중앙부처에 1, 2 차관 제도가 있는 것처럼 광역단체도 1, 2 부단체장 제도를 도입해 정무부지사의 법적·제도적 권한을 더 넓혀주는 것도 좋을 것"이라며 "정부 부단체장의 경우 도정과 시정의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故) 이의근 전 경북도지사 임기 말(6개월 전)에 발탁된 이 의원은 김관용 현 도지사가 취임했을 때도 그 자리를 유지하며 무려 1년7개월을 호흡을 맞출 정도로 평가를 받았다. 교사·국정원 출신이 정무부지사에 기용된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국회와 언론 안팎을 넘나들며 지사에게 큰 힘을 실어준 것이 그가 좋은 평가를 받았던 이유 중 하나다. 이 의원의 정무 부지사 시절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나와 특별히 친한 줄 알았더니, 안 친한 사람이 없었더라'라고 할 정도로 폭넓은 대인관계를 가졌다.

◆역대 정무 부단체장 '이력도 다양'

대구시 역대 정무부시장 6명의 이력은 다양하다. 대구 출신은 남동균 현 부시장 뿐. 4명은 경북 김천, 예천, 청도, 성주 출신이며 나머지 신동수 제2대 정무부시장은 충남 부여 출신이다. 신 전 부시장은 신탁은행과 현대건설·현대전자에 근무했던 민간 영입파였다. 그는 퇴임 후 영진전문대 산학협력단장을 거쳐 현재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 민간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진무 초대 정무부시장은 한국과학기술원 금융공학연구센터 연구위원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김범일 3대 정무 부시장은 6대 남동균 부시장의 보필을 받고 있는 현 시장. 문영수 4대 부시장은 대구시에서 주요부서를 돌며 20년 넘게 근무한 내부 승진자. 현재도 고향에 머물며 대구시 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박봉규 5대 부시장은 2년 동안 무난히 직을 마친 뒤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특이한 이력은 역대 대구시장이 대다수 경북고 출신이었는데, 정무 부시장 역시 6명 중 4명이 경북고 출신이었다.

경북도는 초대 정무부지사부터 6대까지는 공무원 출신으로. 대체로 도에서 국장·실장, 관선 기초단체장 등을 지냈던 인물이 발탁돼 도정을 돕는 일에 매진했다. 특이할 만한 이력도 별로 없었다. 7대 이철우 부지사부터 이 관행이 깨졌다. 김영일 8대 부지사 역시 치과의사 출신으로 구미 경실련과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공동대표를 맡았던 시민단체 인사였다. 그는 사회복지 분야에서 적잖은 성과를 냈다.

한편 경북도는 9명 중 3명이 구미 출신(고(故) 노병용 2대, 김영재 5대, 김영일 8대 부지사)이다. 포항이 2명(이석수 초대 부지사, 공원식 부지사)이고, 경북 예천(안윤식 3대 부지사), 상주(황성길 제6대 부지사), 김천(이철우 7대 부지사)이 각 1명이었다. 특이한 것은 제4대 엄이웅 정무부지사가 경남 김해 출신이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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