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수집한다는 것은 사랑과 인내, 그리고 세상의 혼잡에 질서를 부여하는 갈망, 앞으로 결코 없을 마지막 수집품을 찾으려는 집요한 의지를 전제로 한다. 그렇기에 경매는 물건을 맡기는 측이나 구입하려고 하는 사람 모두의 가슴을 콩닥거리게 한다. 마침내 가격이 결정되는 순간, 경매품들은 상품 가치와 상관없이 사이좋게 나란히 자리하다가는 먼저 선택당하면 동료들을 뒤로한 채 그곳을 떠나버리고 만다. 구매자는 좋은 거래를 했다 싶으면 구입한 물건을 앞에 두고 '씨~익' 웃으며 만족해한다.
프랑스의 작가 피에르 상소는 '아주 사소한, 그러나 소중한'에서 "그것들은 이제 폐기물이 되었다. 우리는 그것을 다락이나 사용하지 않는 방에 집어 넣어버리거나 아니면 아예 고물 처리장으로 가져갔다. 한데 그것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나서는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다"로 물건들의 운명을 설명했다.
지난 주말 조상들의 생활상을 엿보며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우리고장의 한 민속품 경매장을 찾았다. 초등학교 때의 키 낮은 나무의자에 앉은 30여명의 입찰자를 상대로 경매가 진행됐다. 이날 경매장에 온 사람들은 토요일 오후 지루함을 달래기 위함이거나 샅샅이 뒤져 감춰진 보물을 찾을 생각이거나, 뭔가 가치 있는 물건을 찾아갈 거라고 직감한 사람들일 것이다. 차례로 등장하는 물건들은 대부분 생활전선에서 상처를 입었거나 시대의 뒤안길로 밀려나 사용이 아예 불가능한 것들이다. 그 중에는 아직 쓸 만한 것도 존재한다. 학교 졸업장이며, 개인이 받은 상장'감사패도 보인다. 저들을 저렇게 무리하게 전시해도 될까? 저 물건들의 주인은 이런 모욕을 의식이나 했을까? 아니면 거둬 온 사람들이 간교한 술책을 쓰지나 않았나? 이런저런 생각이 교차하는 동안 응찰을 부추기는 경매사의 입담과 함께 하나 둘 주인을 만나 사라진다. 사람들의 능욕을 겸허히 견뎌내고 있는 저들 물건들에게 말할 기회를 준다면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흔히 경매라고 하면 이처럼 한 곳에 응찰자들이 모여 진행하는 오프라인 경매를 떠올리지만 집에서 컴퓨터 마우스와 키보드로 관심 물건을 찾아 경매로 사는 인터넷 경매 시대가 도래한 지 이미 오래다. 이런 가운데 오랜만에 경매 관련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조폐공사가 오만원권 빠른 번호 1만9천900장을 다음달 28일까지 6차례에 걸쳐 인터넷 경매키로 했다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소리 없이 사라질(?) 것들을 시장에 풀어놓는다는 것도 그렇지만 경매로 벌어들인 수익금을 어려운 이웃돕기 등 공익 목적에 사용키로 한 것은 '빅 뉴스'다.
홍콩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특정 글자와 숫자를 멋대로 배열해 의미를 담은 차량 번호판을 제작, 경매에 올려 입찰금 전액을 사회복지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홍콩에서 HK1은 2억원, KISSME와 ILOVEU는 각각 17억원, JC1은 1억3천만원, 홍콩의 주권이 중국에 반환된 해(1997년)를 가리키는 1997은 6억원선에 낙찰됐다고 한다.
경매금액이 바로 개인의 사회환원금으로 평가돼 특급 호텔과 레스토랑 등 공공장소의 주차장 등에서는 이들 번호판을 단 차량에 대해 자리를 양보하는 배려의 미덕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좋은 번호판을 단 차량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향해 기분 좋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진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같은 공익을 위한 '착한 경매'가 이번 오만원권 경매를 시작으로 정부나 산하 기관, 또는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다반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황재성(주간매일 취재부장)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