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혼란은 빛의 속도로 가속화하고 있다. 인간은 우울해지고 꿈을 잃었으며, 현실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폭력과 타락의 오염물질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기특하게도 인류는 아직 질식사하지 않고 있다. 마지막 희망의 끈이 실낱처럼 버틴 덕분이다. 바로 꿈이고 미래이자 상상력이다. 희망의 끈은 애니메이션으로 눈앞에 다가온다. 마치 '힘들지? 잊지마. 아직 우리에겐 꿈이 있어'라고 외치는 듯하다. 어른들이 잃어버린 동심을 되찾는 날, 인류의 희망도 돌아오리라. 유난히 힘든 올 여름, 희망들이 찾아오고 있다.
◆78세 노인과 소년의 모험이야기 '업'(Up)-29일 개봉
세상은 고령화 시대를 넘어 초고령화 시대로 치닫고 있다. 나이 이야기가 아니다. 신체 나이가 10대, 20대인들 뭐하랴. 꿈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라면 진작에 초고령 세대로 넘어간 것이 아닐까. '업'에 등장하는 78살 노인 칼과 8살 소년 러셀은 '세상 사는 게 재미없다'고 푸념만 해대는 우리들에게 '네가 세상 사는 재미를 알아'라고 말한다. 황당한들 어떠랴. 무모하면 더 좋다. '토이스토리', '벅스라이프',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더블', '카', '라따뚜이', '월·E'를 만들면서 애니메이션계의 최대 강자로 군림하는 회사는? 바로 디즈니와 픽사의 콤비다. 이들이 만든 2009년 신작이 바로 '업'이다. 과연 전작의 명예를 이어갈 수 있을까?
영화 '업'은 독특한 오프닝 덕분에 처음 5분 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30년대 극장에서 탐험가 먼츠의 활약상을 보던 칼은 발랄 소녀 엘리를 만난다. 훗날 부부가 된 이들 둘의 70년 평생이 단편영화처럼 흘러간다. 아름답고 슬픈 누군가의 인생을 지켜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감동이다. 하지만 속절없는 세월은 흐른다. 칼은 그저 집 한 구석을 지키는 어쩔 수 없는 78살의 노인으로 늙어간다. 세상을 떠난 아내 엘리와의 약속, 바로 탐험가 먼츠가 갔던 남미의 폭포로 떠나는 꿈은 그저 꿈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어느 날 엘리와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은 집에서 혼자 사회와 단절한 채 살아가는 칼에게 8살 소년 러셀이 우연히 찾아온다. 노인에게 봉사를 하고 뱃지를 받기 위해서다. 마침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 재개발 때문에 아내와의 추억이 담긴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 칼은 결심을 한다. 수만 개의 풍선을 단 집을 비행선 삼아 남미의 폭포로 떠나기로 한다. 황당하고 말도 안된다고? 애니메이션인데 안 될 게 뭐 있겠나. 우연찮게 동행한 불청객 러셀, 그리고 꿈에 그리던 남미의 거대한 폭포 옆에서 만난 말하는 개 더그와 알록달록한 거대한 도요새까지. 아무런 계획도 없이 집을 떠난(아니 집 밖에서 나오지는 않았지만) 70대 노인과 8살 소년의 앞길에는 갖은 위험과 모험이 기다리고 있다. 네모난 얼굴의 칼의 인생에 끼어든 동그란 얼굴의 러셀. 얼굴만 차이나는 것이 아니다. 쾌활한 성격의 부인 엘리가 세상을 떠난 뒤 칼의 주변은 점차 흑백으로 변한다. 꿈과 희망이 사라진 무미건조한 생활. 하지만 집을 찾아온 러셀에게 칼이 문을 열어주는 순간 색채가 살아난다. 모험 속에 새로운 캐릭터를 만날 때마다 색채는 더욱 풍성해진다. 밥 피터슨과 공동 감독을 맡은 피트 닥터는 '몬스터 주식회사'로 감독 데뷔를 했고, '월·E'의 스토리를 담당했다. 할아버지의 모험담과 미래 로봇 이야기는 닮은 구석이 있다. 아울러 동글동글 귀여운 소년 러셀의 얼굴은 동양인의 모습이다. 픽사의 한국계 애니메이터 피터 손의 얼굴을 모델로 했기 때문이다.
◆세상을 뒤집는 야생의 스캔들 '아이스에이지3:공룡시대'-8월 12일 개봉
어린이들에게 '아이스에이지'는 '매트릭스'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만큼 흥행 잠재력을 지닌 작품이다. 극장에서 '업'과 '아이스에이지3'의 예고편을 함께 본 어린이들은 기꺼이 후자쪽에 한 표를 던졌다. 일단 눈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지만 '아이스에이지3'은 전편보다 시간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빙하기와 더불어 사라졌다고 믿었던 공룡들이 등장하기 때문.
얼음이 녹아버리는 위기를 모면한 맘모스 부부 매니와 엘리, 이야기꾼이자 사고뭉치인 나무늘보 시드, 거친(?) 외모와는 달리 정이 많은 검치호랑이 디에고. 전편에서 사랑 싸움을 벌이던 매니와 엘리는 아기 맘모스 탄생으로 시끌벅적하다. 나무늘보 시드는 이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낀다. 비록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형제라고 여겼던 매니가 가족에게만 신경을 쓰자 시드는 자신의 가족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 빠진다. 그리고 급기야 공룡 동굴에서 공룡알 3개를 훔쳐낸다. 매니는 알을 돌려줘야 한다고 설득하지만 시드는 자신이 키우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알에서 깨어난 3마리 아기 공룡은 시드를 엄마라고 생각한다. 공룡의 실제 엄마는 거대한 육식공룡 티라노사우르스. 지하에 위치한 거대한 공룡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이 사건으로 시드는 위험에 처한다. 가는 곳마다 거대한 공룡의 위협이 도사리는 숲 속에서 친구들은 무자비한 공룡 사냥꾼인 애꾸눈 벅을 만나게 된다. 지하세계 최고이자 최대의 공룡 루디와 사투를 벌인 경험이 있다고 떠벌리는 벅은 이들을 돕겠다고 나서는데. '아이스에이지' 시리즈와 '로봇', '호튼'을 만든 폭스와 블루스카이 콤비의 작품이다.
◆방심할 수 없는 여름 애니메이션 전쟁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차세대 거장으로 꼽히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썸머 워즈'(8월 13일 개봉). 17살 천재 수학 소년에게 일어난 이야기를 담은 환타지 모험영화다. 사이버 가상세계 'OZ'의 보안 관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천재 수학 소년 겐지는 짝사랑하던 선배 나츠키의 부탁으로 시골 여행에 동참하게 된다. 27명이나 되는 나츠키의 대가족과 함께 시골 마을에서의 즐거운 추억도 잠시 뿐. 겐지에게 날라온 한 통의 문자 메시지는 'OZ'를 사상 최악의 위기에 빠뜨린다. 'OZ'의 붕괴는 현실 세계의 위기로 이어지고, 겐지는 모든 사건의 주범으로 몰리게 된다. 드디어 겐지와 나츠키의 대가족은 인류의 운명을 건 일생일대의 전쟁에 나서게 되는데. 자신을 믿어주는 가족,꼭 지켜줘야만 하는 사람들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정서로 그려내고 있다. 실사형 애니메이션보다 훨씬 정겨운 느낌을 주는 것도 특징.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라는 전작을 통해 국내 팬들에게도 유명하다.
미국 여름 극장가에서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의 독주를 가뿐히 잠재운 새로운 실사 혼합형 3D 애니메이션 '지포스'(G-force)가 8월 중 개봉할 예정이다. 해리 포터는 개봉 1주일 천하에 만족한 채 애완동물 기니피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지포스'에 정상 자리를 내주었다. 지포스는 미국에서 지난 주말(24~26일) 사흘간 3천215만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월드디즈니가 내놓은 이 작품은 애완동물 기니피그의 모험을 다룬 가족 코미디물. 흥행 보증수표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을 맡았고, 니콜라스 케이지, 샘 록웰, 페넬로페 크루즈 등 할리우드 톱스타들이 목소리 출연에 나섰다. 특수요원으로 분장한 기니피그들의 흥행 폭발력은 한국에서도 이어질까?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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