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인간이 보다 편리한 생활을 위해 만든 틀이지요. 하루 24시간 틀에서 생로병사, 희로애락이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현재 건강한 것만도 굉장한 축복임을 인식 못 하고 앞으로 생겼으면 하는 기쁨을 향해 질주합니다. 세상의 이치에 대해 깨닫고 실천하는데 미흡합니다만 쉰을 몇 년 앞둔 지금에 보편적 진리를 절실히 수용하게 되더군요. 건강한 몸이 뒷받침돼야 세상살이가 순조롭다는 것을 말입니다. 특히 한참 웃고 뛰어다닐 나이에 병마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면 더욱 '건강이 우선'이란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꼭 일주일 전 일입니다. 7월 22일자 매일신문 '이웃사랑'에서 곽기원군의 사연을 읽고 송금 심부름을 했습니다. 보내는 사람은 '무소유'라는 익명을 썼습니다. 무통장 입금액 5만8천원은 수십명 학생의 돈이기에 다수 의견에 따라 정한 이름입니다. 이 금액은 2년 가까이 돼지저금통에 모았던 '벌금'입니다. 지각, 교재 가져오지 않았을 때, 과제물 해오지 않은 경우 초등학생 500원, 중고생은 1천원을 저금통에 넣도록 했습니다. 단 벌금은 자신의 용돈에서 지출해야 한다고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벌금은 주로 성실성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변화를 주고자 만든 계책입니다. 효과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5만8천원이 모아졌으니 저로서는 결코 달갑지 않은 돈입니다. 아이들은 돼지저금통을 보면서 어떤 용도로 쓸 것인지 자주 묻습니다. 추운 날은 떡볶이를 사먹었으면, 더울 땐 아이스크림 사주면 어떨까 저게 기대를 해보지만 뭔가 아이들 머릿속에 남게 해주고 싶어 모른 척했습니다.
기원군의 기사가 나던 날, 돼지저금통을 열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물었더니 아이들이 동의를 해주었습니다. 올해 중학교 1학년인 현석, 상협, 세창이가 열개의 돼지저금통 입구를 벌려서 돈을 꺼냈습니다. 50원, 100원, 500원, 1천원짜리 지폐 서른여섯장이 책상 위에 쏟아졌습니다. 종이돈은 3번 정도 접어 넣은 탓에 은행원에게 내밀기가 부끄러워 제가 제안을 했습니다. 다리미로 다려서 반듯하게 만들자고. 그러면 기원군이 병석에서 거뜬하게 일어날 거라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다림질이 끝난 후 아이들의 얼굴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한층 부드러웠습니다.
수요일, 신문에 '무소유' 이름과 금액이 활자로 찍혔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아이들에게 소식을 전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7년 동안이나 소아암으로 병마와 싸우던 곽기원군이 지난달 27일 하늘나라로 갔다는 슬픈 소식이 실려 있었습니다. 다리미로 폈던 돈이 장례식 비용으로 쓰여질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기원군을 신문지면으로 만났습니다. 비록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지만 기원군이 가슴을 데워줬다고 믿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작은 정성을 쏟은 경험은 정신적 성장통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앞으로 '벌금 돼지저금통'은 비어져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벌금으로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용돈을 모아 불우한 이웃을 위해 기부할 줄 하는 천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기원군, 하늘나라에서는 운동, 놀이, 여행을 마음껏 즐기세요.
장남희(운암고 3년 임유진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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