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도로는 힘의 논리에 지배된다. 근대 이전 우리 도시 도로는 사람을 위해 존재했다. 수레는 사람의 속도로 다니거나 피해 다녀야 했다. 이를 뒤집은 건 일제 강점기 때 新作路(신작로)다. 길의 폭을 넓히고 바닥을 다진 이유는 자동차 통행을 위해서였다. 대구에 버스가 다니기 시작한 게 1929년이고 기껏해야 30인승 3대, 24인승 20대가 대구 전역을 누볐으니 통행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사람이 자동차를 피해 다녀야 하는 입장이 됐다. 숫자가 늘어날수록 자동차가 도로를 지배하는 힘은 커졌다. 고가도로와 지하도, 육교 등은 여기서 파생된 결과물이다. 자동차가 보다 빨리 달릴 수 있도록 도시는 점점 거대한 구조물들로 채워졌고, 사람들은 더 큰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오래된 힘의 논리가 다시 뒤집히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여 반갑다. 우리나라 교통 문제의 집합지라고 할 수 있는 서울의 변화는 신선하기까지 하다. 서울시는 이달 7일부터 남대문시장~명동을 잇는 회현고가차도를 철거하는 데 이어 14일부터는 한강대교 북쪽 고가차도를 두 달에 걸쳐 철거한다. 눈에 띄는 건 주도권의 변화다. 서울시가 내놓은 교통 소통 대책은 좌회전 차로 1, 2개 늘리는 정도뿐이다. 대신 명동과 남대문 권역이 연결돼 상권이 활성화되고 남산 접근성이 향상돼 장애인, 노약자들이 한층 쉽게 남산에 오를 수 있을 거라는 점을 강조한다. 역전도 이만한 역전이 없다.
서울시는 101개의 고가도로 가운데 도심 교차로 위의 고가도로 19개를 우선 철거 대상으로 정하고 1960년대에 건설된 것부터 차례로 뜯어낼 계획이라고 한다. 철거하면 도심 교통이 극도로 악화되리란 전망이 우세했던 청계고가를 탈없이 철거한 데서 생긴 자신감이 물씬 풍긴다. 수십 년간 차량이 점령했던 세종로 중앙에 길이 557m, 폭 34m의 광화문광장을 조성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자극받은 듯 부산시도 2013년까지 서면 인근 중앙로를 확장한 뒤 내부에 광화문광장보다 큰 부산중앙광장을 조성하는 계획을 내놓았다.
도심 도로 폭이 좁은 대구에 이런 개념의 광장을 만들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일극장 앞 도로 횡단보도 설정조차, 36년 된 신암육교 철거조차 못 하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대구의 도로는 여전히 자동차가 지배하고 있다.
김재경 사회1부 차장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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