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이 덮인 고갯길을 오른다. 길가의 마른 억새는 가느다란 흙기둥이 얼어붙은 것처럼 꼿꼿이 서서 겨우내 찬바람과 다투고 있다. 고개 너머 구비길을 돌아서면 고향 집이 보일 터. 멀찍이 외롭게 선 나무는 나뭇잎 하나 없이 앙상한 가지만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따뜻하다. 나뭇가지에 반사되는 낮게 드리운 햇살은 마치 손을 대면 열기를 전해줄 것만 같다.
한국의 대표적인 수채화가 고찬용(59)이 그린 '귀로'에는 삭막한 겨울 풍경 속에 아련함이 묻어있다. 사진처럼 명징한 수채화 이미지 속에 오롯한 추억이 담긴 시골 고갯길을 몽환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40년 가까이 수채화만 고집하는 작가 고찬용의 전시회가 14~20일 달성군 가창면 동제미술관에서 열린다. 작가는 우리의 산하를 사랑한다. 그의 작품 속에 담긴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울컥 밀려올 것만 같다. 시골의 어느 벌판 한쪽에 선 '외딴집'을 보자. 가을걷이를 끝낸 들녘의 허전함과 함께 구름을 머금은 코발트빛 하늘의 청아함을 함께 담았다. 구름과 물빛, 먼 산을 표현하는 작가의 기법은 이미 수채화의 경지에 올랐다.
계명대 김임수 교수는 "작가가 말하는 소위 '시간차 말리기'라는 기법은 하늘을 배경으로 산들이 떠오르고, 중첩된 산들의 공간적 깊이를 나타내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수채화가 요구하는 시간적 요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작가 고찬용은 "수채물감만이 내가 원하는 세계를 흰색 바탕에 표현할 수 있게 해 주었다"며 "한국의 풍경을 수채화로 맑고 투명하게 남겨두고 싶었다"고 말했다. 053)767-0014.
김수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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