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독립운동가의 독립운동 업적을 90년 뒤 후손이 찾아냈다. 장한 후손은 김수희(50) 대구경찰청 수사과장.
김 과장은 "할아버지의 얼굴도 모르지만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 자랐고, 반드시 할아버지의 독립운동 업적을 발굴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노력은 제64주년 광복절을 맞은 오늘, 국가보훈처의 건국포장 수훈자 명단에 조부가 포함되는 결실로 이어졌다.
김 과장의 조부인 겸산 김정기(金定基·1885~1947) 선생은 파리장서(Paris長書)사건 서명자로 작고할 때까지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아 집에 연금되다시피 했다. 파리장서사건은 1919년 종교계 중심으로 전국을 뒤흔들었던 3·1운동 직후 유림들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심산 김창숙을 중심으로 전국의 유림 137명이 서명한 독립청원서를 파리 세계평화회의에 보낸 일이다.
김 과장의 할아버지 흔적 찾기는 2007년 그가 고령경찰서장으로 부임하면서 시작됐다. 100여년 동안 집안에 보관돼있던 할아버지가 남긴 자료를 일일이 들췄다. 100여 점의 간찰(편지)과 30여점의 사료·문집이 나왔다. 이병호·하성재·조규철·성순영·이현규·정인보·이건창·박기현·박장현·문영박(문희갑 전 대구시장의 조부)·이승만(초대 대통령) 등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교유한 기록이 문집에 남아 있었다.
"100년 전의 옛 선비를 찾아 전국을 떠돌았어요. 그분들의 후손들과 연락이 닿았고, 할아버지와 관련된 귀중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지요." 알고 보니 영남 유학의 맥을 이은 심재 조긍섭의 제자들이 많았다. 또 조부가 소눌 노상직 선생 슬하에서 '성호학파' 학문을 계승한 유학자임을 알게 됐다. 하지만 김 과장은 "조부가 당시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여러 개의 이름을 사용하며 독립운동을 했기에 독립운동가로 증명하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10여명의 후손과 직접 만났다. 그 중 이병호 선생의 막내아들은 70대 후반으로 국내 굴지의 그룹 회장이었고, 부산에서는 조부의 스승인 노상직 선생의 증손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자암계첩'(노상직 제자 명단첩)이라는 귀중한 책을 구할 수 있었고 조부의 독립운동 업적을 증명하는 열쇠가 됐다"며 "마치 보물 찾기하듯 할아버지의 100년 전 흔적을 찾았고, 덕분에 한학 공부도 많이 하게 됐다"고 뿌듯해 했다.
김 과장에게는 또 다른 희망이 생겼다. "조부는 정통 퇴계학파를 계승한 조긍섭과 성호학파의 학맥을 이어받은 노상직 두 분의 학문을 함께 공부한 지역에서 몇 안 되는 유학자였어요. 최근 고향인 청도군이 할아버지의 이 같은 학문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연구용역에 나서 학문적 가치가 재조명될 것 같습니다."
1987년 특채로 경찰에 투신한 김 과장은 "당시 부친이 '할아버지가 일제 순사들 때문에 고초를 당한 터에 경찰이 되려고 하느냐'면서 말린 적도 있었다. 할아버지가 일제에 항거한 정신을 앞으로 '조폭' 잡는 데 이어가겠다"며 껄껄 웃었다.
글·사진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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