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일본 軍部의 誤判

태평양전쟁 開戰(개전) 당시 일본이 세운 목표는 미국의 해군력을 일시 무력화한 뒤 미국이 기력을 차리기 전에 일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강화협상을 맺는다는 것이었다. 진주만 기습의 성공으로 이러한 목표는 현실성을 띠는 듯했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의 의도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진주만 기습 5개월 만에 미국은 도쿄 공습으로 보복했다. 이는 당시 일본 내의 낙관적 분위기를 一掃(일소)해 버렸다. 한동안 태평양에 얼씬도 못할 것으로 생각됐던 미국이 제국의 심장부를 강타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일본 군부는 초조해졌다. 무언가 결정적인 조치가 필요했다. 여기서 나온 것이 미드웨이 해전이다. 이 전투의 최종 목표도 평화협상이었다. 작전을 기획한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의 생각은 이랬다.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대양으로 끌어내 일본 해군의 장기인 艦對艦(함대함) 결전으로 격멸한다. 이를 통해 우월한 입장을 확보하고 적에게 평화협상에 응하도록 강요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애초부터 공상이었다. "설사 미드웨이에서 승리했다 해도 일본이 지속적인 정치적 이익을 얻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야마모토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의 지적 수준을 짐작하게 한다.… 1941년 12월 7일 그의 조종사들이 만들어낸 초토화된 전함과 사상자들의 이미지가, 정치적 성향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던 미국인들을 어떤 국내 정치가도 이룰 수 없는 수준으로 단결시켰고, 그 공격을 저지른 범죄자들을 전면적으로 파멸시키겠다는 매서운 결의를 다지게 했으며, 그에 따른 대가는 전혀 신경 쓰지 않게 만들었다."('미드웨이 1942', 마크 힐리)

일본 NHK가 8'15 특집으로 9∼11일 방영한 '일본 해군 400시간의 증언'이 일본 우익을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다. '자존자위'아시아 해방'이란 개전 논리가 허구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온 옛 일본 해군 핵심 장교의 입에서 이런 주장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전쟁은 육군과 해군의 반목 속에서 충분한 준비 없이 이뤄졌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또 "아무런 계획도 승산도 없이 명분 없는 침략전쟁을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미국의 결의에 대한 야마모토의 오해도 이 같은 일본 군부의 무모함이 그 토양이었던 셈이다. 일본 군부는 처음부터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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