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경북 무턱대고 '우리가 남이가' 외치면 실패"

대구와 경북의 통합과 조화를 위한 시동이 걸렸다. 대경권 광역경제발전위원회 박광길 사무총장은
대구와 경북의 통합과 조화를 위한 시동이 걸렸다. 대경권 광역경제발전위원회 박광길 사무총장은 "양 지역의 통합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외환위기를 넘긴 지 10년이 흘렀지만 호주머니 사정은 달라진 게 없다는 대구경북 사람들의 푸념을 심심찮게 듣는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지역에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DGFEZ), 첨단의료복합단지 등 굵직굵직한 '황금 보따리'가 여러번 풀렸지만 지역민의 체감 정도는 미약하다. 사람들은 지리적 불리함, 투자 인프라 부족 등의 뻔한 이유를 나열하곤 한다. 31일 만난 대경권 광역경제발전위원회의 조타수 역할을 맡은 박광길(59) 사무총장은 용감했다. 그는 지역이 제자리걸음 치는 첫번째 이유를 '사람'이라 꼽았다. 대구 경북의 통합을 막는 걸림돌이 사람이라는 것이다.

◆경제통합만이 살 길

"2006년 고향인 대구에 왔을 때 의아했던 것이 앞에선 대구시민과 경북도민은 한몸이라면서 뒤돌아서서는 금세 지역 이기주의에 빠지는 모습이었어요. 해마다 지역 경제 체질개선을 위한 시급한 과제로 대구경북 경제통합이 손꼽혔지만 공염불에 그치는 것은 우리 내부의 문제가 가장 큽니다."

박 총장은 대구경북의 통합이 우리 지역의 살길이라고 했다. 대구와 경북의 조화가 가장 먼저 풀어야할 실타래라는 것이다. "무턱대고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뭉칠 것을 강요하면 또 실패합니다. 사람, 시스템, 돈, 네트워크 등을 사안별로 슬기롭게 조화하는 방안을 찾아야지요. 일정한 돈을 놓고 대구, 경북이 나누자고 하면 조금이라도 더 챙기려고 당장 대립합니다. 그건 틀린 길이에요. 대신 중앙정부로부터 돈을 더 따오면 해결됩니다. '등 따시고 배 부르면' 싸움이 안 나는 법이지요." 이 때문에 그는 이날 출범한 대경권 광역경제발전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신공항과 기업유치에 사활

박 총장은 수십년 후 대구경북의 장밋빛 미래상을 책임지는 것은 첫째가 영남권 신공항 유치요, 둘째는 글로벌기업의 유치라고 강조했다. "지역이 야심 차게 추진 중인 테크노폴리스, 경제자유구역청, 의료단지 등은 영남권 신공항이 전제된 이후의 문제입니다. 대구처럼 내륙에 묻힌데다 국제노선 하나 없는 도시에 어느 글로벌기업이 문을 두드리겠어요. 영남권 신공항이 차일피일 미뤄질수록 대구가 꿈꾸는 미래상은 회색 일색일 뿐입니다."

그래서 박 총장은 올 연말까지 제1과제인 신공항 유치에 올인하겠다고 했다. "왜 밀양인가를 논리적으로, 지속적으로 주장해야 합니다. 대구경북은 물론 경남, 광주·전남까지 아우를 수 있는 허브공항은 밀양밖에 없다는 논리를 빨리 개발해야 해요. 신공항이 안 되면 그나마 반토막이 난 의료단지 유치는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요. 앞으로 의료단지를 반납하겠다는 각오로 뛸 생각입니다."

박 총장은 큰 기업, 글로벌기업을 얼마나 많이 유치하느냐에 지역 발전의 성패가 걸렸다고 본다. 생산기반인 기업이 없으면 지역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오랜 지론이다. 그가 2년 동안 대구시 신기술산업본부장을 지내면서 가장 큰 업적으로 영원무역과 노키아 유치를 꼽은 것도 이런 생각 때문이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을 유치할 수 없다면 지역의 미래는 없어요. 수도권이나 충청권에 비해 대구경북은 기업유치 환경이 열악합니다. 그네들이 한 발짝 움직이면 우리는 백 발짝을 움직여야 겨우 투자유치할 기업을 손에 꼽을 수가 있지요."

◆공직자 머리를 바꿔라

그가 지난해 대구시를 떠나 야인(野人)으로 돌아서면서 후배 공무원에게 입이 닳도록 얘기한 것은 '한'과 '전사'(戰士)론이다. "공무원이 됐으면 대구를 위해, 시민을 위해, 이 사회를 위해 일하겠다는 자기중심, 자기확신이 있어야 '한'을 품게 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열정과 아이디어가 나오면서 성과로 연결할 수 있는 에너지를 받는다"는 것이다. 또 현장을 뛰는 용맹스런 전사가 되라는 것도 입에 달고 다녔다.

하지만 지역의 공직자상은 여전히 아쉽단다. 대경권 광역경제발전위원회 출범을 앞두고도 주변에서 수많은 회의론을 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연간 운영비가 3억8천만원에 불과한데다 마땅한 중앙부처 소속도 아니면서 위원회가 무슨 힘이 있느냐?' '단지 위원회에서 일할 25명 안팎의 고용창출 외엔 의미가 있나?'라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박 총장은 "왜 사람들은 한쪽 방향만이 전부인 양 여기고 거꾸로 뒤집어볼 생각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위원회가 무소속이면 지식경제부, 국토해양부, 행정안전부 등 많은 관련 부처에서 예산을 더 많이 따올 수 있다는 장점이 커져요. 광역지역특별회계만 연간 10조원입니다. 관건은 제대로 된 사업을 발굴하는 것이지요. 지역 공무원들이 만날 회의론에 빠져있는 대신 중앙부처가 지역을 위해 발벗고 나설 수 있도록 좋은 아이템을 강구하는 데 온 열정을 쏟아야 한다고 봅니다." 박 총장이 꿈꾸는 지역의 미래가 기대된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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