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중'노년문화연구소 정경숙(61) 소장이 올 4월 남편 신동근 영남이공대 교수와 사별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죽음'을 주제로 인터뷰를 요청하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정 소장은 수십년간 '죽음'에 대해 공부하고 준비해온 사람이 아니던가. 그에게 죽음에 대해 다시 듣고 싶었다.
아무리 이론으로 많이 공부했다고 하지만, 정 소장에게도 역시 남편의 죽음은 충격이고 슬픔이었다. 젊은 시절은 세상을 변혁하는 일에 열심이었고, 나이 들어서는 남들에게 퍼주는 데에 열중했다. 그에게 남편은 '실속없는 사람'이자 '바보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장례를 치르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참 잘 살았다'고. 누군가는 평생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을 잃었다고 했고, 누군가는 사심없이 의논할 사람이 없어졌다며 슬퍼했다. 남편이 소리없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베풀었는지 장례식장에서 알게 됐다.
"잘 사는 삶이 잘 죽는 삶을 만드는구나, 절실히 깨달았어요. 그 열매가 사후에 맺는다는 것도요."
신 교수의 남편으로서의 삶도 다시금 보게 됐다. 결혼 첫날부터 써온 그의 일기에는 부인에 대한 절절한 사랑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살아오면서 그 사랑의 1%도 미처 몰랐다. 그래도 평소 죽음에 관해 자주 나눴던 이야기가 큰 도움이 됐다. 어느 곳에 어떤 형태로 묻히고 싶은지, 비석의 글귀는 무엇으로 할 것인지, 죽음 후 들려줬으면 하는 찬송가까지. 그래서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죽음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남편의 죽음을 보면서, 잘 산다는 게 이렇게 중요한 거구나 새삼 깨달았다.
남편은 열정적으로 아름답게 살았다. 점점 맑아지고 거룩해져 갔다. 인본주의적 사상도 한층 무르익어갔다. 인생의 절정에 이르러 깨끗하게 지는 동백꽃과도 같은 죽음이었다.
"일본에서는 '노년'이 아닌 '숙년'이라고 하죠. 삶을 완성해나가는 단계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는 노년을 '사그라드는' 시기로 보는 게 안타까워요. 그동안 삶의 숨겨진 부분을 드러내며 멋있게 자신을 완성시킬 수 있는 시기죠. 이웃과 지구로 세계를 좀 더 확장하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가까운 사람의 죽음만큼 큰 스트레스가 있을까. 그는 자신도 모르게 분노와 공격성이 나타났다. 자연스레 마음의 문을 걸어닫게 됐다. 혼자 버려진 느낌이었다.
"죽음을 경험한 사람을 홀로 두지 마세요. 진정한 사랑과 배려가 큰 힘이 됩니다. 외국에는 홀로된 사람끼리 갖는 치유모임이 있는데, 우리에게도 필요한 시스템이죠. 우는 것도, 웃는 것도 힘드니까요."
죽음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깜짝 놀랐다. '내 죄가 많아서' 가족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남은 가족들에겐 너무 큰 상처다. 그 사람을 대신하란 말도 마찬가지다. 가족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주는 것은 주변인의 몫이다.
'죽음'에 대한 그의 강의는 계속된다. 아름다운 중'노년문화연구소(053-783-3340)는 대구 최초로 '사진으로 만드는 자서전' 강의를 영남이공대 평생교육원에서 진행한다. 사진 자서전 프로그램에는 인생 그래프'가계도 그리기, 유언서 작성법, 사전의료지시서, 묘비 만들기, 죽음에 대한 법률 등의 프로그램이 포함된다. 다음달 20일 개강하는 이 프로그램은 통장, 비밀번호, 보험증권까지 다 준비해두는 실질적인 죽음 준비다. 남편과의 사별을 통해 그 준비의 필요성을 더욱 진하게 느꼈다.
남편과 같이 가기로 한 백두산에 홀로 올랐다. 이제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결국 남은 것은 '사랑'이더군요. 한 고비를 넘으며, 남편을 더 사랑하게 됐어요. 그 사람은 저에게 '하루하루 잘 사는게 잘 죽는 것'이란 깨달음을 남겨주었네요."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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