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고택=조선후기 예술계를 대표하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태어난 옛집. 충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로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다. 이곳은 음택과 양택을 한 공간에 배치한 것이 이색적이다. 고택을 마주 볼 때 왼쪽에 추사의 묘가 있으며, 오른쪽으로 증조부 김한신(金漢藎)과 증조모 화순옹주(和順翁主)의 합장묘가 위치한다. 증조부 묘 오른쪽 산자락을 넘으면 고조부 김흥경(金興慶)의 묘가 있으며, 묘 앞에 자리한 수령 200년의 백송(白松)이 유명하다. 인근 예산군 덕산면엔 2대천자지지(2大天子之地)로 알려진 남연군(南延君) 묘가 있다.
'태백산 정기 받아~' '~보광천 흐르는 물 우리의 정기다'. 우리네 정서에 깊이 새겨진 교가(校歌), 군가(軍歌)의 일부분이다. 어떤 지역이나 단체를 상징하는 이들 노래는 주위 산천의 기운이 그 속에서 생활하는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테고, 나아가서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강조하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다.
만물은 자기 나름의 기운을 가진다. 산은 산 자체의 기운으로 그 자리를 지키며, 그 기운으로 동물과 식물을 포용한다. 큰 바위가 듬성듬성 박힌 험한 산은 험한 대로의 기운을 가지며, 흙산은 흙산의 기운을 가지고 수십억년을 그 자리에 버티고 있다. 물도 또한 같다. 완만하게 흐르는 물은 여유로움을, 급하게 흐르는 물은 급한 기운을 내뿜는다.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란 말을 흔히들 한다. 사람은 살고 있는 그 땅의 기운을 받아 태어나고 살아간다는 얘기다. 어려울 것도 없다. 귀가 아프도록 들어온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즉 인간은 주위의 기운과 동화한다는 것이다. 전자는 인간과 그 주위 자연환경과의 관계에 중점을 둔 것이고, 후자는 인간과 주위 생활환경과의 관계에 중점을 뒀다고 할 수 있다. 풍수에서 중점을 두는 것은 전자의 경우가 된다. 즉 험한 산세에선 기(氣)가 강한 무골(武骨) 성향의 인물이 태어나고, 부드러운 산세에선 그 보다는 문인(文人)의 기질이 강한 인물이 태어난다고 본다.
추사고택 주위는 흙산이다. 그것도 야트막한 구릉이다. 어디 한군 데 험한 곳이라곤 없다. 한마디로 부드러움 그 자체다. 곡선의 미를 강조했던 어릴 적 '한국의 미'가 생각나는 그런 정겨운 지세다. 봉긋한 주산이 그러하고, 미끈한 종아리와 같은 청룡과 백호가 그러하며, 길게 두른 여인네의 허리띠 같은 안산이 그러하다. 이 부드러움이 추사와 같은 큰 예술가를 탄생시킨 것은 아닐까.
고택은 좌청룡에 기대어 서있다. 집의 좌향이 동향(東向)이니 좌청룡은 북쪽이 된다. 결과적으로 뒷산과 함께 북서쪽 살풍(殺風)을 피하기 위한 배치라 해도 되겠다. 더욱이 터의 북서쪽으론 삽교천이 흐르고, 강의 흐름이 끝나는 지점은 서해바다가 된다. 겨울바다의 찬바람을 막음엔 이 보다 좋은 배치가 없겠다.
고택의 뒷산은 용산(龍山)이다. 용은 물을 필요로 한다. 용이 바야흐로 물속으로 들어가려는 부분, 즉 고택 북서쪽에 추사의 고조부 묘가 있다. 추사 유적지의 맨 마지막을 장식하는 곳이기도 하다. 묘가 위치한 부분은 용의 콧구멍에 해당하는 자리라 한다. 그만큼 길지라는 얘기다. 주위를 봐도 그러하다. 입수(入首)도 두툼하니 기를 모으고, 좌우의 선익(蟬翼)도 흠잡을 곳이 없다. 더욱이 고택서 이어온 맥이 여기서 끝맺음 한다. 그만큼 힘이 강하다. 왼쪽으론 들판과 이어진 서해바다다. 그러기 위해선 천연적 예방이 필요하다. 이 묘의 좌선익은 우선익보다 훨씬 길고 두툼하다. 거센 바람에 깨지지 쉬운 혈처(穴處)를 보호하기위해 자연적으로 형성된 성벽의 역할을 한다.
증조부 묘 옆엔 화순옹주의 열녀정문(烈女旌門)이 있다. 부군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옹주가 아버지 영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식음을 전폐하다 뒤따랐다는 가슴 아픈 사연이 서린 곳이다. 지금은 주춧돌만 휑하니 남은 터 위로 가을바람이 소슬하다. 부부(夫婦), 참으로 정겹고도 어려운 단어다.
희실풍수·명리연구소장 chonjjj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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